고향의 추억 담은 '방앗간 사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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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마을의 김범순.김성인.김오순씨(오른쪽부터)가 추석을 앞둔 4일 마을 방앗간 벽에 옛날 사진을 걸고 있다. 화순=프리랜서 장정필

"옛날 생각을 하면서 한번 재미지게 놀아 보자는 거지. 이번에 안 오는 사람들은 크게 후회할 것이여."

광주에서 자동차로 30여 분 거리인 전남 화순군 도암면 도장마을. 김범순(69) 이장은 "가을걷이까지 겹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어린아이처럼 추석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70여 가구 150여 명의 주민 가운데 절반 이상이 노인이지만, 이들은 모처럼 고향을 찾을 자녀와 형제, 친지들을 위해 특별한 추석을 준비하고 있다.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도장마을 사람들의 삶과 꿈'이란 추억의 사진전. 이를 위해 주민들은 오래된 사진첩 속이나 액자에 넣어 뒀던 사진들을 모았다. 올해 77세인 노인의 신혼시절 흑백사진과 이젠 아이 엄마가 된 소녀의 단발머리 사진, 소풍 가서 교련복을 입고 폼을 잡은 것, 대부분이 초가이던 옛 마을 풍경 등 정겨운 장면이 많다. 사진전은 함석 지붕의 옛 방앗간에서 열 계획이다.

주민 김성인(49)씨는 "전시회를 위해 10여 년간 방치했던 방앗간을 노인들까지 나서 청소했다" 며 "5일 벽뿐만 아니라 벨트나 저울 등에도 사진을 걸거나 붙일 예정"이라고 했다. 경비는 마을 기금 등에서 300만원을 빼 쓰기로 했다.

2일에는 울력(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일하는 것)으로 길가와 공터의 잡초를 베는 등 대청소를 실시했다. 또 마을 입구에 볏짚으로 귀성객 환경 아치를 만들고, 마을 앞으로 흐르는 정천의 갈대밭 사이에 500여m가량 오솔길을 냈다. 고향을 찾은 이들이 어린 시절처럼 냇가에서 놀게 하기 위해서다.

주민 김대기(70)씨는 "명절을 쇠러 오는 사람이 150명쯤 될 것"이라며 "남들에게 보이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끼리 고향을 되돌아보고 추억을 더듬어 보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화순=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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