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관계에 전기를 한소 정상회담에 바란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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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냉전구조를 청산하는 역사적 조류에서 뒤처져왔던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북아시아도 급속한 변화와 흐름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반세기가 넘도록 휴전선을 두고 긴장상태를 보여왔던 한·미·일과 북한·소·중의 대결구조가 한소 수뇌회담의 실현으로 재조정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정세변화는 통일의 길을 마련할 수 있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수도 있지만 새로운 질서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심각한 도전일 수도 있다.
45년간 체질화돼온 대결구조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주변정세는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다.
종래의 안보 전략적 시각에서 보자면 한소관계의 개선은 필연적으로 소련의 영향력이 남한에까지 미치게 됨으로써 지금까지 이를 저지하려고 노력해왔던 미국의 존재를 약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여러차례 태평양국가임을 선언하고 이 지역 진출을 시도해온 소련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과의 관계개선은 동북아지역에서 그러한 의도를 달성하는 돌파구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소련의 이러한 의도는 과거와는 달리 이지역의 군사적 긴장완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데서 미국과의 첨예한 대립을 피하고 오히려 안정지향의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의 협력을 추구하고 시베리아 개발을 통한 경제번영을 도모하기 위해서도 소련은 한반도 지역의 긴장완화를 원하기 때문에 우리와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으로서도 전반적인 질서 개편상황에서 단계적으로 주한미군의 감축을 추진하고 있는 시점이기에 한반도 긴장완화를 통한 동북아의 안정된 새 세력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지금 미소 정상회담에서 논의되고 있는 통독후의 유럽질서개편등이 합의점에 이른다면 동북아에서도 장기적으로는 미소세력의 균형아래 평화와 공존의 토대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상황전개에서 우리가 특히 유념해야 할 점은 소련이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군축과 군비 관리문제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미국은 해·공군력을 대상으로한 소련의 이러한 제안에는 주한미군은 물론 미국의 핵우산을 비롯,남북한군까지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까지 거의 금기로 되어왔던 이러한 문제에 대해 우리로서도 장기적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믿는다.
또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가져온 북방정책이 남북한의 긴장완화와 통일을 위한 국제환경의 조성에 목적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북한이 이 때문에 고립감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외교적 성과가 북한의 실패로 인식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한민족공동체를 모색하는 대화의 상대로 그들이 안정감을 갖는 국제적 환경을 조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때마침 북한당국도 그동안 미루어왔던 여러 차원의 남북대화를 재개하자고 제의해 오고 있다. 남북한 관계개선을 위한 외부적 여건이 성숙되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북한의 이러한 제안은 아직 구체적 내용이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일단 다행한 일이다.
한소 수뇌회담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는 물론 평화통일의 여건조성을 위해 의미깊은 계기』라고 청와대 당국이 발표한 것처럼 이 획기적 외교대사가 결실을 맺도록 거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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