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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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박경용
어둠에 엎디어 숯검정같은 묵은 미역을 씹다. 주린 창자가 파래처럼 물을 겨다.
불현듯 눈동자에 박히는 한 톨 빛의 티눈. 아아, 또 살리로구나.

<시작메모>
몇 년째의 내 침묵을 이 『이끼론 서설』로써 깨뜨리는 사실에 스스로 큰 의미를 매기려 한다.
강인한 생명 의지를 이끼에 부쳐 여러 각도에서 삶의 기복을 조명해 보려는 의도로 연작시 「이끼론」을 구상하기는 꼭 10년 전이었다.
고도한 상징과 절제를 꾀한다는 확고한 전제만이 있었을 뿐 시조니, 자유시니 하는 형식의 한계 따위는 아예 문제 밖의 것이었다.
그랬는데 이제야 얽힌 타래같은 혼란에 질서의 실마리가 잡히었고 첫 생산을하고 보니 저절로 한수짜리 시조의 태깔을 띠게 된 것이다.
시인은 어차피 시에 쓰러지고 시로 일어나는 법이다. 살고 볼 일이다.

<■약력>
▲1940년 경북영일 출생 ▲1958년 동아일보 및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세종문학상, 84년도 대한민국 문학상등 수상 ▲시조선집 『적』, 시선집 『소리로 와서』,동시선집 『새끼손가락』등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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