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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 「통석의 염」 해석 구구/일왕 사죄문안 어떤 뜻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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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어로 “매우 애석” 뉘앙스 큰 차/한국요구 거세 그나마 얻은셈/일왕 『우리나라(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습니다.』/일 총리 『본인은 과거의 한 시기 한반도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견디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을 체험하셨는데 대해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를 드리고자 합니다.』
○「통석」의 사전 뜻
◇한국
『몹시 애석하게 여김. 매우 유감으로 여김.』(대한한사전)
『몹시 애처롭게 여김.』(한글학회 지음 큰사전)
『몹시 애석하게 여김.』(이희승 국어대사전)
『대단히 슬프게 애석해 하는 것.』(조선어 대사전)
◇일본
『심히 애석해 함.』(대한화사전)
『몹시 애석해 하는 것.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일.』(광사림)
『대단히 슬프고 애석해 하는 일.』(대사림)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일본국어대사전)
『대단히 애석해 하는 것.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광사원)
아키히토 일왕이 24일 만찬답사에서 노태우대통령에게 밝힌 일제식민지배에 대한 사죄표현은 우리측의 요구가 어느 정도 수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일측은 우리가 요구했던 가해자와 피해자및 사과주체의 명시를 일단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즉 『우리나라(일본)에 의해… 귀국 국민들(한국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일왕)은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같은 발언에 대해 유종하외무차관은 『일단 과거를 일단락짓고 미래지향적으로 한일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말』이라고 평가하고 우리 정부로서는 또다시 일왕의 사죄를 문제삼을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왕의 발언자체가 그 이전의 표현보다 진전된 것이라고 해서 우리 국민의 기대 수준에 부응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어떤 면에서는 일왕이 진심으로 참회와 반성의 뜻을 담았다고 보기에는 미흡한 측면도 있다.
예를 들면 아키히토 발언중 「통석의 염」이란 희귀한 표현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최호중외무장관은 지난 23일 이 문안을 전달한 야나기 주한 일본대사에게 이를 「뼈 저리게 뉘우친다」는 뜻으로 해석할 것을 양해받았다고 외무부측은 밝히고 있고 우리 정부도 실제 이같이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뼈저리게 뉘우친다는 뜻의 일본어는 「통절」이며 「통석」은 대단히 슬프고 애석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뜻이란는 게 일본사전및 일본국내에서의 일반적 해석이다.
일본 외무성이 영역문으로 표현한 이 대목은 「deepest regret」로 「지극한 유감」이란 뜻으로 우리측의 「뼈저리게 뉘우친다」는 해석과 역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 표현은 유감뿐 아니라 반성및 뉘우침의 뜻까지 표명됐느냐의 해석문제를 앞으로도 계속 야기할 것으로 보이나 일본측은 과거 일왕이 누구에게 한 사과표명보다 강도높은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더욱이 일본측은 헌법상의 국왕의 위치를 내세워 마지막까지 사과주체를 넣지 않으려다 우리측의 강력한 요구에 밀려 받아들였다는 점을 들어 그들의 성의를 설명하고 있다.
외무부 관계자는 『일왕의 사과는 조용히 협상되어야 할 미묘한 사안이 양국 언론에 의해 공개리에 논의됐고 이로인해 일본정부가 일본의 극우세력들로부터 받았던 압력을 고려할 때 무척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일왕의 헌법적 특수성때문에 가이후 총리가 같은 날 노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를 드린다』고 한 것까지 고려하면 일본이 그들로서는 성의를 다했다고 하는 것이 결코 무리한 설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84년 전두환대통령 방일때 히로히토 전왕이 한 유감표명과 히로히토가 74년 미국에 『불행한 시대에 유감』,78년 중국에 했던 『일시 불행한 사건도 있었으나』와 비교하거나 작년 아키히토 일왕이 이붕 중국총리에게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데 대해 유감』이라고 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진전된 내용이다.
일본이 이처럼 사과의 강도를 높인 것은 우선 최근 동구및 유럽지역에서 일고 있는 개방과 화해,블록화의 국제정세에 부응해 일본이 동북아권을 하나의 경제단위로 주도할 필요성에서 한국과의 미래를 향한 화해에 역점을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노대통령이 지난 14일 일본기자들과의 회견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분명한 내용으로 사과하지 않고는 한일 관계가 정상화되기 어렵다』고 말한 것처럼 일본측도 한국 국내여론의 강한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한일간에는 단순히 말로써 해결하지 못할 골이 깊이 패어 있음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일왕이 어떤 식의 사죄를 하든 일본침략을 「진출」로 표현하는 역사교과서의 왜곡이 아직 시정되지 않고 있고 사회당이 제안한 일본국회의 대한사과 결의안 채택이 집권 자민당의 반대로 무산된 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군국주의 과거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 여전히 부족함은 일본이 세계 2위의 경제력에 걸맞는 국제정치적 지위를 모색해 나가는데 인접 아시아국가들의 성원을 받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조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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