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표 「여당식 매너 익히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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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대통령에 깍듯이·총리와도 불화 해소/내각제 개헌 대비 2인자 위상확보 애써
김영삼 민자당대표최고위원(YS)이 여권 제2인자로서의 변신과 위상확보를 서두르고 있다.
지난 전당대회(9일)때 노태우대통령에게 야당식으로 뻣뻣하게 대했다가 민정계의 불평을 들었던 김대표는 그이후 언행에서 여당식 체취와 표현이 두드러지기 시작했으며 노대통령 다음 서열 2위로서의 질서구축을 모색하고 있다.
노대통령에 대한 김대표의 언급에서도 이런 점이 확연하다. 대표최고위원으로 첫 기자회견에서 『노대통령의 훌륭한 국정수행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뒷받침론을 개진하는 것을 시발로 18일 당내 모임에선 『당 총재이신 노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치자』고 밀도있는 표현을 구사했다.
「총재중심」이란 용어는 5공 민정당대표위원시절의 노대통령이 썼던 것으로 여권내 서열확인용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의전에서도 깍듯함을 가미하려는 흔적이 눈에 띄고 있으며 15일 청와대 당지도부 회동,17일 재정위원과의 만찬에서도 김대표는 노대통령과 악수할 때나 얘기할 때 특유의 뻣뻣한 고자세를 탈색하려는 노력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런 장면들은 박철언발언파동와중에서 있은 청와대회동에서 김대표가 노대통령에게 「당신」 운운하며 『정치를 그만 두느냐,마느냐』의 사생결단식 비장함을 토로했던 것에 비교하면 변모의 강도를 실감시켜 주는 것이기도 하다.
김대표쪽에선 이제는 여권 제2인자로서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위상을 굳히기 위해 강영훈총리를 만나 지난번 당정회의때의 어색한 관계를 씻는 노력을 벌이면서 각계각층과의 접촉폭도 넓혀간다는 계획. 측근인 황병태의원은 『김대표가 박철언파동당시 정서적으로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부닥쳤으나 전당대회를 고비로 「정서관리」에 충실하고 있다』며 『지금이 김대표로선 여당식매너 오리엔테이션기간』이라고 설명한다.
김대표자신도 3당통합직후 그가 30여년 걸어온 야당식의 대중적 인기쪽에 비중을 둘 것이냐,여권 2인자쪽에 충실할 것이냐의 선택에 고민했으나 이제는 여권 2인자로서의 이미지 메이킹작업에 나설 것임을 작심했다는 것이다.
통합초기 김대표는 당내 누구도 따라오지 못한다고 자부하는 대중적 기반을 우선하고 여기에 여당식 행태를 적절히 가미한 스타일을 구사했으나 여당쪽이나 그의 오랜 야당지지자 어느쪽도 만족시키지 못했었다. 「참여속의 개혁」을 외치는 대중적 인기측면과 여성 행태의 어설픈 혼합으로선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고 결국 방향선회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후문.
여당핵심으로서의 위치를 굳히기 위해 노대통령과의 주1회 정례회동 추진은 김종필최고위원에 앞선 2인자로서의 면모를 은연중 과시하려는 측면이 엿보이고 대 행정부관계에서 「당우위」를 확실히 하려는 기세다.
강영훈국무총리와의 18일 점심회동때 김대표는 『정당이 악보를 그려주면 정부는 연주를 하고 연주를 감독하는 것도 당의 기능』이라는 식으로 당정협조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대표의 이같은 「여당다움」으로의 변신 시도를 뒷받침 하는 것은 무엇보다 노대통령과의 관계회복이라고 주변에선 추측.
그 관계회복은 물론 전당대회 강령개정에서 시사한 내각제 개헌합의가 밑바탕이 되었으며 이는 노대통령이 구상해온 92년이후의 정치설계를 김대표가 동의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민정계의 고위당직자는 『내각제 합의가 두사람 관계의 결정적 담보』라고 못박고 『김대표의 2인자로서의 운신에 일정기간 노대통령의 후원이 있을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사실 YS가 내각제문제에 불투명한 입장을 취했을 때 민정계측에선 『개혁이미지만 갖고,시간만 때우다가 현행 대통령제로 밀고 가려는 게 김대표의 속셈』이라는 진단을 내렸고 노대통령도 민정계의 이같은 판단에 동조,상당히 신경을 곤두세웠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2인자로서의 행적이 순탄할지는 미지수다. 당장 당내에서 JP는 노대통령과의 정례회동 추진에 대해 『가령 아들 셋중 하나가 아버지를 만난다고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박태준최고위원도 나름대로의 기회를 보고 있고 밀려났던 박철언씨의 재기시도등이 2인자로서의 김대표의 위치를 변화시키는 변수들이 될 것이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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