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10년」 다시 뜨거운 광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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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치권/전씨 증언뒤 특위는 사실상 폐업/6공·군·여야 시각차 못좁힌채 결론 못내
정치권의 광주문제처리는 지지부진한 형편이다.
국회청문회 활동으로 진상규명에서는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었으나 전두환 전대통령의 증언이후 국회의 광주특위는 사실상 버려진 상태다.
또한 지난해 12월15일 청와대 4자회담에서 정치적 대타협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마무리작업은 가시화되고 있지 않다.
다만 민자당과 평민당이 올들어 각각 제출한 관련 법안만 법사위에 계류돼 있을 뿐이다.
「5·18광주의거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배상등에 관한 법」(평민당)과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 보상등에 관한 법」(민자당)등 양당이 제출한 법안의 제목 만큼이나 광주문제에 대한 서로의 시각이 좁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88년 7월8일 국회에 설치된 「광주민주화운동진상 조사특별위」는 그동안 공식적인 진상규명노력을 벌였으나 결론은 못내리고 있다.
특위는 지금까지 모두 32회의 전체회의를 열었고 19회의 청문회를 개최했다.
청문회는 특히 88년 11월부터 89년 2월24일까지 집중적으로 열렸는데 모두 70명의 증언자가 나서 2백여 시간동안 증언했다.
증언자들을 분류해보면 전 전대통령을 비롯,정호용·박준병·이희성·윤흥정씨등 15명이 이른바 「가해자」라 할 수 있고 김대중평민당 총재를 비롯,광주시민등 50여명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증언은 2백자원고지 3만여장분량의 속기록으로 남아있다.
특위는 이밖에 6차에 걸친 현장검증과 국방부등에서 네차례에 걸친 문서검증활동을 벌였으며 정부를 상대로 3백63건의 문서를 요구,이중 1백65건을 받아 활용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평민당조차 이같은 특위활동을 통해 진상규명에는 어느정도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문동환특위위원장은 진상규명의 성과로 다음의 4개항이 확인됐다고 간추렸다.
▲12·12사태에서 5·17비상계엄확대조치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전두환씨등 신군부세력의 권력찬탈을 위한 쿠데타였다 ▲공수부대의 초기진압과정이 광주참극의 원인이었으며 계엄군의 지휘체제가 이원화되어 전두환­정호용씨 등 공수부대의 비공식 지휘계통이 광주학살의 실질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소위 「김대중내란 음모사건」은 전일파가 광주학살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은폐·전가하기 위해 날조한 것이다.
문위원장은 따라서 특위는 이제 보고서 작성,불출석·위증 증인들의 고발,배상법제정 등의 마무리 작업을 벌여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정부·여당은 12·15의 약속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민자당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이들은 그동안의 청문회로 진상이 모두 밝혀졌고 12·15대타협에 따라 전씨증언과 정호용씨의 의원직사퇴가 이뤄졌으므로 모든 문제가 종결됐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특위를 해체하고 광주보상법을 제정,피해자 보상만 실시한다면 이 문제는 끝난다는 생각이다.
물론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도 문의원장이 정리한 것과는 내용이 많이 다르다.
이들은 당초 민화위의 결론처럼 양비론에 따라 계엄군의 초기과잉진압은 인정하면서도 그후 사태악화는 무장저항탓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자당이 출범,거여체제가 되자 일부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규정에 대해서조차 반발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이처럼 현격한 시각차이를 보이는 것은 광주문제가 군과 현정부,그리고 여야간 정당의 입지와 얽혀있기 때문이다.
광주문제에 대해서는 6공정부나 민자당,그리고 당사자라 할 수 있는 평민당 모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정치권에 의한 5·18의 매듭은 여전한 숙제로 미뤄지는 것 같다.<이재학기자>
◎대학가/재야 반민자투쟁에 가세… 정국 새 변수로/전대협,4만여명 「순례시위」 계획
바라보는 관점에 의해,또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광주사태」로 불리기도 하고 때로는 「광주민중항쟁」이나 「광주민주화운동」으로도 호칭되던 「1980년 5월18일 광주」의 10주기가 하루앞으로 다가왔다.
금년 5·18기념행사는 광주가 무장한 시민들에 의해 장악됐던 80년이후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한 최대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대협은 이미 15일부터를 「광주항쟁계승투쟁기간」으로 설정했고 서울에서만 1만5천명등 전국에서 4만여명의 대학생으로 「광주순례단」을 만들어 18일까지 광주로 집결시킨다는 계획이다.
전노협도 전국의 조합원 6천여명을 광주로 모아 기념행사에 참가한다는 계획이고 국민연합과 전민련등 재야단체들도 일제히 광주로 집결하고 있다.
재야·노동·학생 등 운동권에서는 18일 광주 10주기행사,19일 전대협 제4기 출범식과 전국노동자대회,20일 국민연합주최의 국민대회등 민자당창당이후 최대규모의 집회와 시위를 준비하고 있어 경찰을 초긴장시키고 있다.
운동권에서는 『5월9일의 전국시위는 민자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이같은 국민감정은 5월18일이후 더욱 증폭될 것』이라며 평민당과 민주당(가칭)등 야당도 광주로 집결해 반정부 투쟁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금년 5·18행사는 10주기라는 의미 이외에도 이번 집회가 민자당출범이후 운동권이 총력을 기울인 최대규모로 보수와 진보사이의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결과에 따라 앞으로의 정국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운동권에서는 광주에서 시작된 열기를 부산·대구·서울등 전국대도시의 반정부시위로 확산시켜 단순한 광주기념행사차원이 아니라 예상되는 민자당의 내각제및 이원집정부제 개헌구도를 저지하는등 현실적인 실리도 얻겠다는 입장이다.
5월의 광주행사가 전국적 규모의 국민대회등으로 성공적으로 이어질 경우 지난해 문익환목사 방북이후 계속돼왔던 공안정국을 깨고 운동을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 운동권의 계산이다.
정부 또한 그 정반대입장에서 금년 5·18행사가 더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해야하는 강박감을 갖고 있다.
광주행사를 3일 앞두고 의장 송갑석군(24·전남대총학생회장)등 전대협간부 16명에 대해 일제히 사전구속영장을 발부,검거에 나선 것이나 김근태전민련집행위원장을 구속하고 이수호국민연합집행위원장을 수배한 것도 정부의 「긴장감」을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광주 10주년 행사는 각각 강경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정부와 운동권의 격렬한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며 금년 5,6월의 정국은 정부나 운동권 모두 앞으로의 운신에 커다란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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