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미 관계개선 “물꼬”/미군 유해송환 합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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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 「교차승인」 포기가 대미 접근 도운셈/개발·미봉책 여부는 아직 미지수
북한이 한국전 당시의 실종 미군유해를 판문점을 통해 송환키로 미국측과 합의한 것은 미­북한 관계개선에서 주목할 만한 사태진전이다.
미국과 북한은 지난 88년 12월 이래 지난 4월26일까지 북경에서 8차례 참사관급 외교관접촉을 해오면서 송환방식을 둘러싸고 가장 날카로운 의견대립을 보였었다.
미국은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반환하자고 주장한 반면 북한은 미국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해 인수해가라고 맞섰었다.
따라서 북한이 미국의 요구를 들어준 것은 적어도 현단계에서 미국 공식대표단을 평양에 끌어들여 관계개선의 물꼬를 튼다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인정,차선책을 택하기로 한 것으로 봐야 한다.
특히 북한이 유해송환타결과 동시에 미국에 학자들을 파견하고 미국학자를 북한에 초청하려는 것은 그같은 의도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북한은 오는 17일부터 미국 워싱턴에서 조지 워싱턴대와 일요미우리신문이 공동주최하는 동북아 평화·안보·경제협력 학술회의에 학자들을 보내기로 결정하는 한편 지난 3월 초청을 취소했던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 윌리엄 테일러 부소장을 오는 25일부터 평양을 방문토록 재초청했다.
그러나 북한의 이같은 태도변화가 외교적 고립탈피를 위한 새로운 전략인지,아니면 개방화란 국제정세에 편승하는 것이 아닌 일시적 외교궁지를 벗어나려는 미봉책인지에 대해서는 좀더 시간을 두고 판단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북한은 지난 7일 안병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의 대남전통문을 통해 콘크리트장벽제거와 남북정치협상회의 재개를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으로 하는등 사실상 대화거부 선언을 한 상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또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선 ▲미군 유해송환 ▲남북대화의 진전 ▲비무장지대에서의 신뢰구축 조치 ▲테러리즘 포기 등의 조건을 미국이 계속 고수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더욱이 북한은 주한미군및 핵무기철수·팀스피리트훈련중지와 같은 주장을 계속하면서 한반도 문제의 해결에서 우리측을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고 미국과 직접 협상하려는 태도를 버리지 않고 있어 스스로 대미 접근에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때 한국이 중·소와의 관계개선을 미국­북한관계개선과 연계시키려는 교차승인정책을 북방외교 진전과 더불어 포기한 것이 북한의 단계적 대미접근을 용이하게 하는데 도움을 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이제 미­북한 관계개선은 북한의 대남·대미 기본자세가 얼마나 국제화·현실화하느냐에 달려있지 우리측의 반대나 미국의 태도가 크게 장애요인이 아님을 유해송환 타결이 입증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조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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