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뿌리뽑기”실행 첫걸음/국세청 명단공개 조치와 사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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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가족도 포함 5년간 거래 조사/공직자·정치인들 없어 “옥에 티”
국세청이 11일 사회의 지도자급 인사를 포함한 1백68명의 투기자 명단을 발표한 것은 부동산투기는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국세청은 한달이 멀다하고 각종 투기조사를 벌여왔지만 투기열풍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은채 오히려 전국으로 번져갔다.
이에 불안을 느낀 국세청은 「투기꾼이 부동산에 대한 취미를 완전히 잃어버리도록 하겠다」는 각오로 전국의 부동산 투기혐의자 1천1백58명을 대상으로 무려 1천9백26명의 조사요원을 동원,3월26일부터 4월말까지 세무조사를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국세청은 이 조사에 투기혐의가 짙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모두 포함시켰으며,본인은 물론 가족과 거래상대방에 대한 과거 5년간의 부동산거래까지 집중조사,적발건수는 더 늘어났다.
국세청이 발표한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덩치 큰 투기꾼은 그대로 두고 송사리만 잡아들인다」는 종래의 비판을 불식하기 위해 거물급 인사들을 많이 조사한 흔적을 찾을 수 있어 발표명단에 기업체 대표들이 많이 눈에 띄고 내노라하는 병원원장,일류 대기업의 사장 부인등이 여럿 들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사에 옥에 티가 있다면 보건소 여직원 한명을 제외하면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당초 예상을 깨고 단 한사람도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 이와 관련해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조사대상자들은 작년말이후 부동산을 많이 사들인 사람이라고 전제,『투기조사가 강화되는 이 기간에 부동산 투기를 할 공직자가 어디있겠느냐』고 반문한다. 한마디로 공직자들이 이 기간중 몸을 사리느라 부동산 투기를 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말인데 이를 액면 그대로 믿기는 힘들 듯하다.
국세청은 부동산투기로 조사를 받은 사람중 거래횟수가 많고 추징세액이 많은 사람을 골라 명단을 발표했는데 그 구체적인 기준은 『앞으로 투기조사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들어 밝히지 않고 있다.
국세청이 발표한 부동산투기사례를 살펴본다.
▲사례1=현영기업 대표이사인 이윤혁씨(63)는 지난해 10월 서울 역삼동의 대지 1백12평을 한양상호신용금고에 26억7천8백만원을 받고 팔면서 매매계약서를 2중으로 작성,17억1천8백만원에 팔았다고 신고했다.
이씨에게는 양도소득세등 14억3천2백만원이 추징됐다.
▲사례2=한봉길씨(34)는 삼신건재상사등 3개의 사업체를 경영하면서 사업수입금액 35억2천8백만원을 빼돌려 일산 신도시주변,원당읍등의 토지 8만3천4백81평을 사들였다. 한씨에게는 법인세등 9억1천3백만원이 추징됐다.
또 한씨의 거래처인 팔달목재등 46개업체도 부가가치세등 16억 2천4백만원을 추징당했다.

▲사례3=서울신탁은행 충신동 지점장인 설명수씨(48)는 89년말 강남구 삼성동의 대지 1백81평을 22억원에 취득하는등 여러차례의 부동산거래를 했다.
또 88년 1월 서초구 양재동의 1백49평을 3억3천6백만원에 취득,88년 11월에 팔아 1억5천7백만원의 차익을 남기고도 양도소득세를 신고치 않아 1억1천1백만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사례4=제주해양개발대표인 백형수씨(40)는 지난 88년 북제주군 초전읍소재 임야 20만 5천평을 친족 4명과 함께 광주고속에 환매조건부(골프장건설조건)로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그후 같은해 10월 부동산 매매대금 17억1천4백만원을 받았으며 환매기간이 지났으나 환매하지 않고 동사임직원 명의로 가등기만해 양도소득세를 탈루했다가 2억6천6백만원의 양도세와 법인세 1억7천5백만원을 추징당했다.
이밖에 목병원 원장인 목영자씨는 갈월동에 시가 1백50억원 상당의 병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은행돈을 빌려 부동산을 사들였다. 또 조선산업 대표이사인 권호웅씨와 동생 권호인씨는 은행에서 40억원을 기업운영자금으로 대출받아 오피스텔 신축부지 매입과 신축자금으로 사용했다. 목씨와 권씨등은 은행감독원에 의해 대출금 회수조치를 당하게 된다.
또 동서주택의 경우 사장 이은복씨(42)와 전무 김은규씨(38)가 나란히 투기꾼명단에 오르기도 했다.<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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