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파병 앞두고 본 이라크 美軍 병사의 하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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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최근 이라크 주둔 미군 병사의 하루를 밀착 취재했다. BBC가 동행한 프랭크 오패럴 상병은 생업에 종사하다 이라크에 배치된 예비군 5천여명 중 한 명이다.

그는 4월에 바그다드에 왔다. 맡은 일은 민정 업무. 그래서 매일 수많은 현지 주민과 접촉한다. 긴장과 보람이 시시각각 교차한다. 이라크에 추가 파병될 한국군은 재건과 대민지원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오패럴 상병의 하루로 파병 한국군의 일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오패럴은 바그다드 동부의 물러스키너 미군 기지의 411민정부대 소속이다. 오늘 그의 임무는 전쟁으로 집을 잃은 이라크인 8백여명을 수용한 인근 힐스데일 난민촌을 방문하는 것이다. 이곳은 전쟁 이전 이라크군 기지였다. 전에는 이곳을 매주 서너차례 찾았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 411민정부대는 원래 시내 카날 호텔에 있었다. 그러나 두 차례의 폭탄 공격을 받은 후 안전을 위해 2기갑연대가 주둔한 물러스키너 기지로 옮겼다. 난민촌과 멀어지면서 방문 횟수도 자연히 줄었다.

부대를 나서기에 앞서 그는 사막 위장군복과 철모, M16 자동소총으로 완전무장한다. 최근 받은 호신용 9mm 권총도 찬다. 그가 탄 차가 기지 밖을 나서자 무장 호위차량이 따라 붙는다. 현재 바그다드 미군들에게는 경계태세 중 최고 단계인 '스렛콘 델타'가 내려져 있다. 전투요원이 아닌 오패럴도 직접 소총을 쏜 적이 있다. 호텔을 약탈하는 이라크인 트럭의 타이어에 다섯발을 발사했다.

엄중한 경계 속에 난민촌에 들어서자 주민들이 "프랭크, 프랭크"를 외치며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이들이 의지할 데는 미군뿐이다. "왜 자주 오지 않느냐"는 난민들의 질타에 오패럴은 "미안하다. (저항세력이) 우리를 날려 버리려 하지 않는다면 더 자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여성이 다가와 방이 너무 비좁다고 불평하지만 해결 방법이 없다. 이 가족이 머물 공간을 늘리려면 다른 누군가를 내보내야 한다. 오패럴은 "조금만 참아보자"며 달랬다.

수용소를 떠난 그의 차량 행렬은 시내 대민지원센터로 향했다. 이곳은 이라크인들이 미군에 불만 사항을 토로하고 미군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곳이다. 이 센터는 이전에 시내의 유엔 단지에 있었다. 그러나 유엔 단지가 폭탄 공격을 받은 뒤 이라크 공군기지였던 이 건물로 옮겨졌다. 이곳에서 오패럴은 이라크인 통역관들을 통해 주민들의 불만을 듣는다. 통역관 중 제일 친했던 사드는 지난달 목숨을 잃었다. 이탈리아 외교관과 일하던 중 저항세력의 총격을 받았다.

부대로 돌아온 그는 늦은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잠시 휴식의 시간이 왔다. 지갑을 펼쳐 아내의 사진을 바라봤다. 웃음도 울음도 나오지 않는다. 지난 1월 그는 치과 위생기사였던 아내와 결혼했다. 다행히도 그는 12월 중 2주간 휴가를 간다. 크리스마스는 아내와 함께 보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리곤 다시 돌아와야 한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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