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돈줄이 말라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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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는 고사하고 운영자금마저 떨어져 늦은 밤까지 사채 시장을 기웃거리거나, 그것도 안 돼 끝내 공장 문을 닫는 동료 기업인이 늘고 있습니다."

섬유.화학제품 수출기업인 대구 A사 김모 사장은 요즘 입술이 바짝바짝 탄다. 경영 사정이 갈수록 나빠져 채산 맞추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몇 달째 계속되기 때문이다. 배럴당 60~70달러 선에 이른 국제 유가와 상반기에만 50원가량 주저앉은 환율이 김 사장 회사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 공단 전체를 짓누르고 있다. 김 사장은 "불과 3, 4년 전 유가가 배럴 당 24~25달러였을 때 마련해 둔 비상대책도 요즘엔 휴지조각이 돼 버렸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어떤 회사가 살아남겠느냐"고 한숨 지었다. 이처럼 기업들의 수익성이 나빠지면서 돈줄도 급속히 마르고 있다. 이미 국내외 경기는 내리막길로 접어든 양상이어서 당분간 나아질 조짐이 안 보인다. 이 때문에 판매나 영업으로 벌어들인 돈이 줄어드는 바람에 은행 대출 등 빌린 돈으로 연명하는 기업도 덩달아 급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넘치는 사내 유보금을 실탄 삼아 왕성한 투자를 벌이는 것은 몇몇 대기업만의 얘기"라며 "많은 중소기업은 운전자금마저 마련키 어려운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경고한다.

◆ 2분기에 빌린 돈만 50조원=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기업들이 금융사 등에서 빌리거나 회사채.증권 발행으로 끌어쓴 돈은 49조6530억원에 달한다. 이는 1분기(36조6410억원)보다 무려 13조1000여억원 많다. 갈수록 바닥을 드러내는 기업들의 금고 사정 때문이다. 이달 초 한은이 조사한 2분기 제조업 매출액 경상이익률은 고작 6.7%로 최근 3년 새 바닥이다. 이는 1분기(8.5%)에 비해서도 1.8%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올 1분기만 해도 1000원을 투입해 85원을 벌었지만 2분기엔 상황이 더 나빠져 67원밖에 못 벌었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2분기 기업들의 자금 부족액은 29조7000억원으로 치솟았다. 모자라는 돈의 규모가 올 1분기보다 9조1000억원 커진 것이다.

그나마 증자 등 직접 금융 조달 창구도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은행 등에서 비싼 이자를 물고 빌린 돈이 증자나 회사채 발행보다 훨씬 많다. 이 기간 기업의 순수한 금융 차입금은 1분기(10조1590억원)보다 급증한 21조8430억원에 달했다.

◆ 투자 증가는 '착시'=한은에 따르면 2분기 설비 투자는 총 21조731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7% 늘었다. 상반기 전체로도 설비투자액은 41조2356억원에 달한다. 한은은 기업의 투자는 나름대로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몇몇 대기업이 주도한 조(兆)단위 대규모 투자로 인한 '착시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올 상반기에 이뤄진 설비 투자의 약 70%(28조5000여억원)가 150개 대기업에 의해 이뤄졌다. 게다가 이들 회사는 대부분 쌓아둔 자체 자금으로 설비 투자에 나섰다. 산은 경제연구소 설비투자팀 노재웅 차장은 "대기업은 90% 이상이 자체 자금으로 설비투자에 나서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자금 여력이 있는 대기업만 투자에 나설 뿐 대다수 중소기업은 운영자금 마련에 허덕이며 동분서주한다는 얘기다. '착시현상'은 이를 한 데 합쳐 통계를 내다 보니 나온 셈이다.

표재용 기자

*** 바로잡습니다

9월 27일 1면 '기업 돈줄이 말라간다' 기사 중 '올 1분기만 해도 1000원을 투입해 8.5원을 벌었지만 2분기엔 상황이 나빠져 6.7원밖에 못 벌었다는 얘기다'에서 8.5원은 85원으로, 6.7원은 67원으로 각각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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