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업은 초법적 처방/5ㆍ8 투기억제대책 왜 나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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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근거법 모호해도 “잘했다” 여론/기업들 땅욕심이 「화」자초한셈
비상조치에 가까운 부동산투기 억제대책이 결국 동원됐다.
말이 「통치권 차원」의 부동산투기억제지 「5ㆍ8」대책의 내용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통상적인 행정과 법령ㆍ관계규정ㆍ제도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또는 훨씬 넘어가 있는 조처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전날의 대통령 특별담화에서도 언급되었던 바,바로 「과다보유 부동산의 강제매각」인 것이다.
이같은 방침은 지금까지 숱하게 거듭되어 오던 「비업무용 부동산의 관계규정에 따른 처분」과는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하는 것으로,쉽게 말해 지금껏 행정의 원칙을 가급적 지키며 창구지도정도로 끌어오던 부동산투기 억제대책으로는 도대체 말이 안 통하니 이제는 「법보다 더 가까운」수단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힘의 논리다.
이번 대책중 ▲여신관리대상 계열기업군에 대해서는 91년 6월말까지 공장터나 주택건설용 토지ㆍ연구시설용 토지를 빼고는 나머지 모든 용도의 땅매입을 금지한다든가 ▲증권ㆍ보험회사가 갖고 있는 부동산중 「투기성향」이 있거나 「과다하다고 인정」되는 등의 부동산을 3개월이내에 팔도록 한다든가 하는 내용들이 바로 힘의 논리가 동원된 대표적인 부분들이다.
또 이번 대책의 큰 골자중의 하나인 제3자 제공의 담보취득금지등은 곧 여신관리규정이 고쳐져 제도적인 뒷받침이 되겠지만,사실 따지고보면 여신관리규정자체가 근거법이 아리송한 것이라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대통령의 입에서 「강제매각」이라는 용어가 서슴없이 나올만큼 제도보다는 힘이 앞세워진 부분이 많은 이번 대책은 그 강도나 성격면에서 지난 80년의 9ㆍ27대책과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9ㆍ27이 국보위의 서슬퍼런 힘과 앞뒤 재보지 않은 거친 개혁의지에 의한 것이었던 반면,이번 5ㆍ8대책은 국민전체의 일치된 여론과 민심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이다.
대기업만이 아니라 부동산투기자의 명단발표를 놓고도 처음에는 『투기는 밉지만 개인의 사생활까지 침해해서야 되겠느냐』는 일부 여론이 있더니 요즘에는 그같은 말 한마디 없는 것을 보면 이번 조처가 어떻게 가능케 되었는가 하는 배경을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이번 조처의 거센 기세에 묻혀 제도의 불합리나 부동산투자의 선의성을 속으로만 외쳐댈 기업들도 적지 않겠지만,사정을 이 지경까지 끌고온 데는 기업들의 잘못이 크다.
단적은 예로 현 정권이 거센 비난속에 실명제를 하루아침에 뒤집어 엎고 「성장론자들」이라는 귀따가운 소리를 들어가며 4ㆍ4 경제활성화대책을 발표한 직후 정부는 각 대기업들에 자진해서 근로자주택을 짓고 보유부동산을 처분하는등 「화답」을 해줄 것을 여러 채널을 통해 촉구했었다.
그러나 극히 일부의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그같은 화답이 나오지 않았고,증시가 폭락하며 「주가지수는 정권지수」라는 심리적 압박이 점점 차오르는 가운데 업무용을 내세운 증권사 지점신축이 눈의 가시가 될 수밖에 없었으며,더욱이 은행감독원의 대기업 부동산보유 실태자료가 최소한의 통계적 여과과정도 없이 새어 나가자 『정부안에도 운동권이 있다』는 대통령의 진노까지 겹쳐 결국 「통치권 차원」의 부동산투기 억제대책을 자초한 것이다.
어쨌든 이번 조처의 실효성은 계속 「민심」이 지켜볼 일이고,또 아무리 사회의 일치된 여론이라지만 행정의 임의성을 크게 키워놓은 초행정적인 조처가 「버릇」이 되면 큰일이라는 것도 분명히 다들 알고는 넘어가야 할 점이지만,이번 조처자체로도 실무적인 문제점은 여러군데에 있다.
우선 매물로 나오는 부동산을 과연 이같은 분위기에서 누가 살 것이냐가 문제다.
토개공이 채권을 발행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또 토개공은 토지이외의 건물은 살 수 없게 되어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가급적 부동산의 국가소유를 늘리기 위해 필요하면 재정지출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또 임직원명의의 부동산구입이 엄한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앞으로 기업의 정상적인 부동산구입까지도 큰 비용부담을 치르게 되는 문제가 남아있고,예컨대 환경청의 기준과 여신관리규정 또는 산림청의 의무조림기준과 여신관리규정이 서로 부딪는 제도적인 불합리를 해결해야 한다는 해묵은 숙제도 있다.
또 이번 대책의 실효성이 최종적으로는 서민주택문제의 해결로 이어져야만 한다는 명제도 남아있다.
그러나 그같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책의 타당성이 여론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요 수준인 것이다.<김수길기자>
◎5ㆍ8투기억제대책<요약>
이번에 발표된 「부동산투기억제와 물가안정을 위한 특별보완대책」은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과다보유부동산처분,신규부동산취득규제를 골자로 하고 있다.
▷대기업부문◁
◇비업무용 부동산처분=49개 여신관리대상 계열기업군(업체수 1천25개)은 6월말까지 비업무용 부동산 자체처분계획을 은행감독원에 제출토록 한다. 국세청은 이와 병행해 5월중 삼성ㆍ현대ㆍ대우ㆍ럭키금성ㆍ한진 등 5대 그룹,6월중 나머지 44개 그룹의 비업무용 토지보유실태를 전면조사한다.
해당기업이 비업무용 부동산은 6개월내(판정시점기준) 자체매각토록 하며 아니면 성업공사에 위임매각하거나 토개공이 택지개발가능토지는 감정가로 매수토록 한다.
위반때는 신규부동산 취득은 물론 대출을 금지. 또 매각되는 부동산은 같은 계열회사나 업주의 친ㆍ인척 등 특수관계인은 이를 살 수 없다.
◇비업무용판정기준강화=연수원ㆍ휴양시설 등 직접 생산활동에 관련없는 부동산은 판정기준을 보다 강화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국토개발연구원ㆍ한국감정원등이 8월말까지 새정비방안을 검토,필요한 것만 연내관계법규를 고쳐 내년부터 시행한다.
◇부동산신규취득억제=49개 그룹은 공장부지ㆍ연구소시설용ㆍ건설업체의 아파트분양 택지 등 직접 생산활동에 필요한 땅외에는 91년 6월까지 신규부동산취득을 불허. 또 이들 대그룹이 콘도업 관광진흥법상 전문휴양업(민속촌ㆍ해수욕장ㆍ수영장),오락업(유기장ㆍ경기장)에 신규진출도 금지한다.
이를 어기고 주거래은행의 승인없이 부동산을 취득했을 때는 ▲취득금액에 해당하는 대출금에 연체이자(연19%)를 매기고 ▲신규대출및 일체 부동산취득을 중단.
◇부동산담보취득제한=앞으로 은행ㆍ보험ㆍ단자 등 금융기관은 ▲개인기업을 포함한 모든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별장ㆍ골프장ㆍ고급주택 등 사치성 재산 ▲개인소유토지중 토지초과이득세과세대상인 유휴토지를 담보로 할수 없도록 한다.
또 제3자 명의의 부동산담보취득도 불허한다. 다만 현재 담보로 잡혀있는 경우는 예외로 인정. 또 이를 일률적으로 적용할 경우 부작용을 감안,중소기업ㆍ서민가계대출 등의 경우는 한은총재가 별도의 기준을 따로 만들어 예외로 취급토록 한다.
◇임직원부동산처분=30대 그룹의 임직원등 제3자 이름으로 된 부동산은 해당기업이 5월중 자진신고토록 한다. 이와함께 국세청이 별도의 실태조사를 실시.
조사결과 ▲기업땅인데 임직원이름으로 돼있는 것은 3개월안에 기업명의로 이전토록 하며 ▲그래도 계속 임직원이름으로 갖고 있을 때는 증여세추징및 강제처분토록 한다.
이밖에 주로 공단조성 주변지역등 개발지역에 기업과 관계없이 임직원이 개인적으로 취득한 부동산은 철저히 실태를 파악해 자금출처조사와 세금추징.
▷금융기관◁
◇증권ㆍ보험사 과다보유부동산매각=증권ㆍ보험사가 갖고 있는 부동산 가운데 89년이후 취득부동산으로서 ▲점포ㆍ사옥용으로 사들여 아직 착공하지 않은 땅 ▲연수원ㆍ체력단련장 등 영업목적이외 부동산▲건물의 상당부문을 임대해 주고 있는 경우는 모두 처분토록 하며 88년말이전 취득부동산 가운데서도 취득후 3년이 지났고 앞으로 2년이내 당초취득목적으로 쓰지 않은 부동산은 처분토록 한다.
◇점포신설동결=신설금융기관을 제외하고 은행ㆍ증권ㆍ보험사 등의 점포신설을 금년은 원칙적으로 동결. 올해 신설예정이었다가 동결되는 점포수는 은행 78개,증권 4개,보험 3백55개 등 모두 4백17개다.
이와함께 내년부터는 인구수ㆍ예수금규모 등에 따라 금융기관 점포설치에 대해 새로운 기준을 정하고 기존점포중에서도 적자점포는 매매ㆍ합병을 통해 처분토록 한다.
◇부동산취득억제=은행ㆍ제2금융권에 부동산취득에 엄격한 기준을 별도로 정해 필수적 부동산에 한해 취득을 허용토록 한다. 이를위해 자산운용준칙 등을 곧 개정한다.<장성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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