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분양' 폭풍… 흔들리는 주택시장

중앙일보

입력

서울시가 지난 25일 전격 도입키로 한 '후분양제'가 주택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당장 시장에서는 경실련 등 일부 시민단체의 호응 속에 소비자 보호와 정확한 비용산출에 따른 적정 분양가 책정이란 측면에서 긍정적이란 반응과 함께 오히려 분양가를 올리고 시장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섞여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26일 건설교통부가 이같은 서울시 방침에 대해 "주택공급 부족에 따른 집값 불안을 막기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 용산공원에 이어 자칫 정부와 서울시간 2차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先·後분양, 제도가 아니다='주택 후분양'은 입주자모집공고 후 착공과 동시에 실시하는 '선분양'과는 달리, 일정 규모 이상 건설공사가 이뤄진 뒤 공급하는 방식이다. 엄밀히 따져 선분양이나 후분양과 같은 분양방식은 제도가 아니다.

현행 주택공급규칙 상(제7조) "사업주체가 대지의 소유권을 확보하거나 대한주택보증주식회사로부터 분양보증을 받은 경우 착공과 동시에 입주자를 모집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즉 적어도 민간아파트의 경우 법으로 선분양이나 후분양을 강제하지 못한다. 따라서 분양방식이 강제력을 가지려면 법적으로 이를 분명히 명시해야 한다.

◇완성품 보고 살 수 있지만, 가격은 '글쎄'=후분양은 시행사나 건설사 등 공급주체의 부도 위험으로부터 수요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 가운데 하나다. 또 수요자들이 거의 다 지어진 아파트를 직접 보고 청약할 수 있는 만큼, 품질경쟁을 유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분양 제고를 위한 업체간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원가가 높아질 수 있다. 여기에 공급주체가 계약금과 중도금 없이 토지비나 건축비를 선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 상승이 불가피하다.

이는 결국 전체적인 분양가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만큼 수요자들에게도 더 많은 비용부담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은평뉴타운 역시 후분양시 현재 계획된 품질이 유지된다면 분양가격도 그만큼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따라서 서울시의 후분양 방침은 궁극적으로 분양가 인하와는 전혀 상관없는 결정이란 지적이 많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부연구위원은 "후분양은 원가를 높여 분양가를 올리게 되는 만큼 주공, SH공사 등 공공기관이 공급하는 주택의 분양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로부터의 재정 지원이 따라줘야 한다"고 말했다.

◇공급감소 불가피..단계별 완충기간 필요=후분양 전면 도입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사항은 공급 감소다. 특히 사전에 충분한 수급 상황을 점검하지 않고 단계별 과정없이 후분양을 단행할 경우 일시에 공급 자체가 중단되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

건교부가 서울시 방침을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건교부 관계자는 "서울시 결정대로 동시에 후분양을 실시할 경우 그 시점부터 1~2년 동안은 공급이 아예 없어지게 되며 그에 따른 비용 상승이 분양가로 전가될 수 있다"며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은 결국 완충기간을 설정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민간아파트 어떻게 되나=후분양 도입시 또하나의 문제는 민간업체의 공급 기피다. 사업용지 구입자금과 건축비용을 먼저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업체로선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서다. 연간 전체 공급물량의 70% 이상을 민간업체들이 공급해 오고 있다는 점에서 공급 부족 현상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건교부에 따르면 지난 2004년 공급된 전체 주택수 46만4000호 가운데 민간 물량은 34만호로, 73%에 달했다. 지난해에도 46만3000호 중 70%인 32만2000호를 민간기업이 공급했다.

이처럼 후분양이 수급상의 문제를 야기할 것이란 우려는 학자들 사이에서 '정설'로도 통한다. 특히 중소형 주택의 공급감소는 상대적으로 더욱 극심해 서민이나 중산층의 주거안정에도 상당한 문제점을 보일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공공택지내 민간아파트의 후분양을 유도하기 위해 택지 공급시 후분양을 조건으로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앞으로 공급되는 공공택지의 경우 평형에 상관없이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데다, 전체 자금을 우선 투입토록 후분양 규정을 둘 경우 민간업체의 사업 추진 자체가 가로 막히게 될 공산이 크다"고 강조했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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