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서 동구 첫 가야금독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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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황병기교수(이대음대)가 지난달 19일부터 23일까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렸던 유럽 한국학협회총회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황교수는 총회 기간중 가야금독주회를 갖는 등 한국의 전통음악을 각국 대표들에게 널리 알리기도 했다. 황교수의 폴란드 가야금 기행문을 싣는다.

<편집자주>
지난달 19일부터 23일까지 폴란드의 바르샤바대에서 열린 유럽 한국학협회 총회에 가야금 독주회와 한국음악에 대한 논문 발표를 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그동안 해외에서 30여회의 가야금 독주회를 했지만 모두 서방세계에서였기 때문에 무엇보다 동구에서 최초로 가야금 연주를 하게된 것이 기뻤다.
지난달19일 정오에 바르샤바 공항에 내리니 조그마하고 한가해 보이는 공항 청사에는 여객용 손수레가 아주 낡은 것 몇 개를 제의하면 새것은 모두 우리나라의 「삼성」마크가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어 신기했다.
이번 회의에는 18개국에서 1백10 명의 학자들이 참석했는데 한국이. 22명으로 가장 많았고 주최국인 폴란드가 20명, 소련이 12명이었다·북한 학자도 6명이 참가했고 불가리아·동독·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 등 동구권의 학자들도 수명씩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매일 바르샤바대 본관 회의실에 모여 한국의 역사·언어·문학·음악·미술 등 분야별로 논문발표와 토론을 했다.
대부분 국제회의의 공용어는 영어이기 때문에 영어가 부족한 동양사람들은 불편을 겪기 마련인데 이번 한국학 회의에서는 제1공용어가 한국어여서 오히려 서양 학자들이 불편을 겪어야 했다. 휴게·식사시간에도 힘들여 한국말을 하는 서양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끙끙거리며 영어를 하던 때의 심정을 느꼈다.
특히 바르샤바대 본관에서 본 두개의 커다란 광주리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텅 비어버린 폴란드공산당사를 바르샤바대측이 도서관으로 쓰게해 달라고 당국에 요청해 놓고 있는데 이 당사를 짓느라 발행한 국채를 소유했던 시민들이 이에 동조하는 뜻으로 보내온 국채가 이 광주리에 가득 담겨있었다.
나의 가야금 독주회는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는 바르샤바 왕궁연주실에서 지난달 20일 오후6시 김정수교수의 강구반주로 열렸다. 나의 작품 『숲』『침향무』 『비단길』과 전통곡인 산조를 연주했다. 화려하면서도 전아하기 이를데없이 꾸며진 이 연주실은 그 음향 또한 마치 가야금을 위해 만들어 놓은 듯 내가 지금까지 연주해 본 장소 중 최고였던 것 같다.
이 연주는 바르샤바방송국에서 TV녹화와 라디오 녹음도 했다. 가야금연주를 들으며 모스크바대학교의 유리 마주르 교수는 눈물을 흘렸다고 했고 마르타 부스코바박사는 『한국음악은 영혼의 음악이기 때문에 체코슬로바키아 사람들이 틀림없이 좋아할 것이니 꼭 우리나라에도 와달라』고 하면서 명함과 함께 초컬릿 한 상자를 선물로 주었다. 북한의 학자들도 감명깊게 들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데 유달리「기교」를 칭찬하는 점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바르샤바대에는 최근 유학 온 한국 학생이 한 사람 있었는데, 폴란드 전역에 약 2백명쯤 있었다는 북한 학생들은 작년 11월께 전원 소환돼 현재는 한 사람도 없다고 했다.
민주화에 앞장서다 비밀경찰에 납치되어 맞아죽은 제르지 포피에 우스코 신부의 무덤에 줄지어 헌화하는 시민들을 보면서 오늘날의 동구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바르샤바 오페라 극장에서 현대 폴란드 최고의 작곡가 펜데레츠키의 오페라 『검정 마스크』를 관람한 것도 이번 여행의 큰 수확이었다·인간의 광기에 찬 초현실적 세계를 그린 이 작품은 연극·음악· 무용·무대 미술이 혼연일체 된 현대 종합예술의 극치였는데 입장료는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해 약 280원.
이 공연을 본 다음날바르샤바에서 45km쯤 떨어진 쇼팽의 생가로 가던 길에 만난 택시운전사는 국제법을 전공한 바르샤바대 졸업생으로 무역회사에 근무하다 생활이 너무 어려워 택시운전을 시작했다고 했다·
아름다운 정원에 둘러싸인 쇼팽의 생가를 휘돌아 흐르던 시냇물도 잊을 수 없다. 얼핏보기에는 쇼팽 생가의 운치를 더해주는 그 시내에는 악취나는 지독한 공장폐수가 흐르고 있었는데 그 부근의 영세한 유제품가공업소에서 흘러나온 물이라고 했다. 오염이 하도 심해 70년대 이후에는 기형물고기조차 살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니 이 나라도 산업화의 폐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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