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는곳도 갈곳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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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오라는 곳도갈곳도없다. 부산시재송동소재 월남난민보호소에 수용되어 있는 2백여명의 베트남인들은 공산수의의 압제를 피해 대한민국에서 「불완전한 자유」는 찾긴 했지만 「국제 미아」신세가 된채 망국의 한을 되새기고있다.
난민들은 한국정부의 보호가 한없이 고맙기는 하지만 언제까지나 난민으로 살아갈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까운 장래에 조국이 자신들을 불러줄리도 없기 때문에 장래 운명에 대한 불안속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부산 수영만이 내려다보이는 6백여평의 부지에 조립식건물 12동으로 꾸며진 월남난민보호소에는 현재 무국적 난민 2백27명(남1백38·여 89명)이 수용돼있다.
현재 이곳에 남아있는 난민들의 가장 큰 희망은 하루빨리 외국으로 이민가 새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건없이 월남난민을 받아주던 미국조차 85년부터는 부양능력이 있는 친인척이 초청해야만 입국을 허용해 이들에겐 더욱 문이 좁아진 셈이다.
이들중 1백여명은 지난해 2월부터 11월까지 난민보호소가 알선해준 어망제작과 봉투만드는 부업으로 1천여만원을 벌어 이민경비로 쓰기위해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오전7시에 일어나 오후10시까지 세끼 식사하는 일외에 특별히 하는 일이 없는 단조로운 생활속에서 기독교와 가톨릭으로 개종한대부분의 난민들은 틈만 나면 간이교회와 성당에 모여 기도하면서 쉽게 이민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달래고 있다.
이중 상도임시수용소에서 부인이 낳은 딸이름을 「상도」라 짓기도했던 주약탕씨(28)는 『소련등 동구권사회주의 국가에서 자유화물결이 거세게 일고있는데도 좀처럼 변하지않는 조국이 안타깝기만 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봉식월남난민보호소장(53·한적상임봉사요원)은 『자유와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한 결코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던 이들 월남난민들중 극히 일부가 최근 한국정부가 베트남과 수교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조국으로 돌아가길 희망하는 난민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최고령자이며 3대가 함께 보호소에서 살고있는 삼콰이엔씨(74·여)는 『미국의 친척이 초청해왔으나 월맹출신이어서 허가가 나오지 않아 평생을 보호소에서 지내게 될까 두려워했는데 이젠 어쩌면 죽기전에 고향땅을 밟을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됐다』고 말해 더욱 처절한 망향의 한을 읽을수 있었다. <부산=강진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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