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다시 찬바람 부나

중앙일보

입력

최근 평양에서 열린 12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성과없이 끝나면서 남북대화와 민간교류에 난기류가 조성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장관급회담이 끝나는 날인 지난 17일 금강산에서 열린 '제주도 민족평화축전'(10월 23~27일) 실무회담에서 이 축전에 예술단과 취주악단을 파견할 수 없게 됐다고 통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남측 축전조직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19일 오전 북측으로부터 '부득이한 내부 사정으로 예술단과 취주악단은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다'며 양해를 구하는 내용의 문서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북한의 고위간부들이 "제주도 축전을 성대하게 열자"는 입장을 표명했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태도다.

지난 2일 방북한 민족평화축전 남측조직위원들과 대화에서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전금진 부위원장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강하게 비난하면서도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물류 중심국가 구상'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등 북핵위기와 남북대화를 분리하는 태도를 보인 바 있다.

특히 북한은 이번 장관급회담에서 남측 일부 반북단체의 해체, 비전향 장기수 송환 등 남쪽이 수용하기 어려운 사안을 들고 나와 남쪽대표단을 곤혹스럽게 했다. 또 제주도 축전 북측참가단의 신변안전 보장문제도 강하게 요구했다. 이는 남측의 핵 관련 공세를 상쇄하기 위한 '맞불'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 일단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지만, 북핵 문제를 더욱 긴장으로 몰아가려는 북한 당국의 의도가 담긴 것일 수도 있다.

지난해 10월 북핵 위기의 재발 이후 지금까지 모두 5차례에 걸친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핵 관련 문구가 공동보도문에 포함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관급회담이 진행 중이던 16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핵억제력의 물리적 공개조치'를 거론한 것도 상당히 이례적인 행동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20일 "북한이 이번 장관급회담에서 보여준 태도를 보면 앞으로 핵 관련 강경발언의 수위를 계속 높여 나가면서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6자회담 당사국들에 압박을 가할 것으로 예상돼 단기적으로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과 부시 대통령의 대북 불가침 조약 체결 거부도 남북관계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全부위원장이 지난 2일 "이라크 파병은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줄 것이며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가 없으면 그 어떤 회담에도 기대를 가지지 않는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다만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남북관계가 악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전문가들은 "북한 내부에 대미 강경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며 "2차 6자회담이 올해 안에 열려 북.미관계에 돌파구가 열리지 않으면 남북대화와 교류도 속도조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창현 기자jch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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