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경찰의 “오리발”(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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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개인적으로는 피고인들에게 중형이 구형된 것에 착잡한 기분입니다.』
18일 오전11시 서울형사지법 중법정 앞 복도.
4명의 고문경찰관들에게 징역 10∼5년의 중형이 구형된 공판진행을 지켜보던 김근태씨(44)는 조용히 부인 인재근(38)의 손목을 이끌고 바깥으로 나와 둘러싼 주위사람들에게 이렇게 심정을 밝혔다.
『86년2월 저 자신이 법정에서 10년형을 구형받았을때 느꼈던 것처럼 담담하기만 합니다.』
고문이 자행됐던 85년 9월부터 이날에 이르기까지 4년8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칠성판」 고문대의 강렬한 전류의 고통과 코에 붓는 물고춧가루의 악몽은 아련해지고,가해자에 대한 증오심마저 사그라들었기 때문인지,아니면 고문경찰관들이나 자신 모두 지난 어두운 시대의 공동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 김씨의 표정은 자신의 말 그대로 몹시 고뇌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구형후 공판은 또다시 치열한 공방전 속에 진행됐다.
구형에 이은 변호인단의 변론후 네 피고인의 최후 진술 차례.
『전기고문·물고문은 물론 뺨한대 때린 적도 없고 욕 한마디 한 적이 없어요.』
모두 한결같이 고문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징역 10년을 구형받은 김수현피고인(57)은 『공소유지담당 변호사측 증인들이 대부분 운동권 출신들로서 이 사건은 민주주의 사법제도를 악용,대공요원을 분쇄하려는 좌경운동권의 치밀하고 조직적인 날조 모략』이라고 김근태씨를 몰아세웠다.
최상남피고인(43)은 『선친이 「빨갱이」에게 죽음을 당했는데 나도 이들 때문에 이처럼 법정에 서게 되다니….』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못했다.
김영두피고인(52)이 『20년 대공활동에 헌신한 나를 이렇게 만든 공산주의자를 뿌리뽑도록 무죄를 내려 다시 일선에서 뛰게 해달라』고 하는 대목에서는 방청석 맨앞에 앉아 최후진술을 듣던 김근태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들이 끝내 완강히 부인할 경우 재판결과에에 대한 우려때문일까.
피고인들의 완강한 혐의사실부인,그동안 단한가지 물증없이 증언만 무성했던 재판,여론재판이냐 실체적 진실이냐. 이러한 무질서한 상념들이 다음달 유·무죄를 가려야할 재판장의 어두운표정과 겹쳐질 뿐이었다.<홍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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