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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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며칠전 신문의 해외토픽 기사에서 이런 내용을 읽었다.
영국 런던 중앙 형사법원은 10일 여성들이 성폭행당할 때 으레 내뱉는 「안돼요(NO)」라는 말은 항상 여자들이 정말로 성관계를 거부하기 위해 쓰는 말은 아니다』고 판결.
29세의 영국 여성이 청년사업가의 아파트에서 술을 마시고 마리화나를 피운뒤 강간당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때 여성은 다만 『노』라고만 했을뿐 몸에 상처가 나거나 옷이 찢긴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간과 관련해 여성이 내뱉는 『안돼요』라는 말은 강간범죄를 성립케할수 없다는 판결이다.
물론 『안돼요』가 모든 경우에 부정의 뜻으로만 쓰이지는 않는다. 우리가부부지간에 서로 「원수」라고 표현할때 그것은 의미대로의 부정적 감정을 뛰어넘는 애정의 우회적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간의 경우는 다르다.
강간의 첫번째 죄악은 우선 남성이 여성을 자신과 똑같은 인격체로 여기지 않고 「성적 대상」으로만 파악했다는 점이다.
성욕은 자연발생적이기만 한것이 아니라 문화적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강간에 대해 분노하고 고발하는 것은 여성을 건강한 양성관계로서가 아니라 지배·정복의 대상으로 삼는 「남성지배 문화」에 대한 고발의 의미가 있다.
남성이 여성을 「성적대상」으로만 파악하고 여성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정복의 상징인 여성의 성적 순결이 여성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담보가 됐으며 현재는 상품이 되기에 이르렀다.
두번째 죄악은 강간의 폭력성이다.
생명체에 대한 폭력성은 생명체가 가진 본연의 권리-생기발랄하게 생존해 갈수 있는 능력-를 좀먹고 파괴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서 서로 돕고 의지하며 나누고 살수 있는 사회성을 허물어뜨려 비굴하게 만들고 굴종과 억압의 정서를 길러낸다.
그동안 여성에게 가해진 깊고 드넓은 폭력은 여성으로 하여금 굴종과 억압의 정서를 갖게 했으며 양성관계는 지배와 피지배 관계로 틀지워지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강간이란 개념이 사라질때 비로소 우리는 평화를 누릴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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