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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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계정세의 급변하는 소용들이 속에서 살고 있노라니 분노와 경악, 그리고 희망과 기대와 같은 교감이 오가는 때가 적지 않다. 길지도 않은 삶에서 단지 더높게, 크게 내보이려는 인간의 본능적 기질을 보다 곱게 순화시키려는 숭고한 노력이 있기에 우리네 마음은 그래도 푸근하다.
여기에 우리의 거친 마음을 달래줄 수 있을뿐아니라 그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큰 시선집들이 세상에 빛을 보게된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한다.
고려대 허세욱교수가 다년간 혼신의 열정을 쏟아 엮어낸 중국고시와 현대시의 백미집이 바로 그것이다.
역자는 벌써 40년 가까이 중국시와 생애를 같이 하며 작시와 연구를 병행해온 중진학자요, 작가이거니와 그의 손길이 구석마다 짙게 스며있는 이 책들에 대해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필자로서는 그 노고를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이다.
흔히들 「한시」를 두고 「고시」라 하고, 현재의중국어로 쓰여진 시를 「백화시」혹은 「신시」라고 하는데 이번에 나온 책들은 그 시대의 알찬 시들을 모두 망라, 정적이며 미적인 조화를 가미한 우리말 역주를 듬뿍 담아놓았다.
시는 문학의 꽃이며 가장 함축된 정감의 표현이다. 중국의 것은 그 비중이 더욱 커서 시의 이해는 삶의 모든 길을 바르게 갈수 있는 지름길이다. 따라서 중국의 문화를 알고 그들의 정신을 알려면 먼저 그들의 시를 가까이 해보아야 한다.
문학이라는 것을 놓고 말하더라도 시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다른 장르를 생각할수 없다. 시는 중국문학의 알파요, 오메가이기에 문학 그 자체의 뿌리인 것이다. 시경과 초사를 빼고 결코 문학을 가늠할수 없다. 악부와 고시를 읊어야 문학의 성장을 이해하게 되고, 위진의 시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기준을 읽게 된다.
또 당·송시에서 인간의 참다운 마음을 느낄수 있으며 명·청의 시에서 이성의 한계와 갈등을 엿볼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살아있는 언어로서 말하는 시를 창조하는 힘을 길렀으니 현대시의 출현은 시를 통한 중국의 진면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중국 그 자체의 모두를 알 수 있는 가장 빠르고 바른 길잡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역시 「문학」이며 그 중에서도 「시」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바라는 바를 충분히 채워줄수 있는 자료가 출간돼 나왔다는데에서 필자의 마음은 큰 기쁨에 차있는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고시부분에는 23명의 1백편에 달하는 다양한 품격의 시가 도연명에서부터 청말 원매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안배돼 있음을 알수 있다. 현대시에서는 중국대륙편에 24명의 시 73편을 형식과 사조의 편견없이 수록했고, 대만편에는 1950년대이후 지금까지 30명의 시인이 쓴 비교적 전형적인작품 초편을 골라넣고 있다.
역자는 책의 머리말에서 『그속에 분단된 아픔과 좌절된 현대의식, 조국에의 가송, 소시민의 애환… 그 모든 것들이 광범하게 담겨 있다』고 그 시 선정의 뜻을 피력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서 특히 『현대명시선』은 우리에게 중국현대시를 총망라 했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이 분야의 연구풍토에도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주리라 기대해 마지 않는다.
유성준 (한국외국어대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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