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계, 원로 세지마의 "일본위기"에 비상한 관심|미·일전쟁론 내세워 보혁대연합 촉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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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일본정계에서는 지난2월 중의원총선을 전후하여 시작된 정계개편논의와 관련, 한 인물의 역할과 그의 목소리에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초점의 주인공은 세지마 류조(뇌도용삼·79) 일본상공회의소 특별고문(이등충상사특별상담역).
그는 지난 3월19일 동경오쿠라호텔 별관12층의 한방에 구일본육사출신 자민·사회양당간부의원을 모아놓고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일본은 50년전과 아주 흡사하다. 여기서 대응을 잘못하면 파국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세지마고문의 난데없는 「일본위기론」은 이 자리에 모인 정계중진들을 압도했다.
그는 이어 39년 독일개전과 2년후 일본이 태평양전쟁에 돌입하게 된 경위를 회상하면서 독일개전50년을 기념하는 지난해 동구가 다시 역사적 소용돌이를 맞게되고 한편 미일관계가 사실상 「경제전쟁」양상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면서 내년이 미국의 진주만기습50주년을 맞는 해임도 상기시켰다.
이 자리에 모인 정계중진은 자민당의 전통산상 가지야마(미산정육·일육사59기) 정조회장, 가토(가등육월·60기) 자치상, 오쿠다(오전경화·61기) 세조부회장으로 중의원예산위이사인 미야시타(궁하창평·61기), 사회당의 정책심의회장 이토(이등무·61기), 동부회장(현재 부위원장)인 참의원 구보(구보환·61기)등 6명.
세지마고문은 육사44기이므로 이들 정계 중진들에게는 대선배일뿐 아니라 태평양전쟁중 이른바 일본군대본영참모를 역임, 전후에는 시베리아에서 장기간 억류된 파란만장한 경험을 갖고있는 원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불모지대』라는 소설로 소개된바 있다. 그는 나카소네(중증근)내각의 유력한 브레인노릇을 했으며 현재도 행정재무정치개혁위원회의 좌장으로 정·재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세지마의 말이 끝나자 이자리에 함께한 육사후배 가운데 가장 연장인 가지야마가 『되풀이할 필요없이 전쟁을 체험한 우리로서는 위기회피에 노력해야 한다』고 진지한 자세로 세지마고문의 의견에 동조했다.
이날 모임이 구육사동창회를 표면에 내걸었지만 세지마의 소집목적이 자민·사회양당의 협조촉진에 있었다는 것은 이 자리에 참석한 인물들의 비중과 역할로 봐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
가토와 이토가 양당의 정책책임자일뿐 아니라 가토·가지야마·미야시타는 지난해말 당세조위간부로 소비세수정안을 정리, 제안한 세제전문가들이다.
이토와 구보는 또 모두 사회당내에서는 「정권당실현」을 위해 현실노선으로 바꿀 것을 추진해온 중심적인 존재들이다.
세지마는 이 자리에서 군후배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계속 밝혔다.
『문제는 세가지다. 첫째 태평양전쟁 당시는 해군력으로, 지금은 경제력과 기술력으로 일본이 세계에 위협을 주고 있다. 둘째 미일관계는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셋째 정치적으로 미일개전까지 2년간 내각은 네차례나 바뀌었지만 지금도 다케시타(죽하등) 내각부터 1년사이에 세번 바뀌었다.』
그는 3월초 열렸던 가이후(해부)-부시간의 미일정상회담이 미일구조조정협의의 난항 때문이었다는 것을 지적, 『가장 문제가 되어있는 대점법(대규모 소매점포법)의 개혁도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미국은 정말로 화낼지도 모른다. 그러면 일본의 입장도 어려워진다』고 우려를 표했다.
세지마는 마지막으로 『여야라는 정당차원을 넘어 모두가 진지하게 이 위기를 벗어나야한다』고 했다.
이 당시는 총선후 국회가 새로 구성돼 특별국회가 열렸으나 보정(추가경정)예산안을 둘러싸고 자민당은 「예산과 관련6개법안의 일괄처리」를, 사회당은 「선예산 후법안」의 주장으로 예산국회가 한창 공전되고 있는 와중이었다.
세지마고문은 이 대연합논의에서도 막후 조정자역할을 했다. 선거가 끝난 다음날인 2월19일 국회에서 가까운 한 호텔에서 다케시타전총리, 가네마루전부총리, 오자와(소택)간사장등 자민당의 세 실력자와 세지마가 극비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세지마고문은 『여야당 제휴만이 위기정국타개의 길』이라는 지론을 폈다.
가네마루는 이를 받아들여 20일부터 다나베(전변성) 사회당전서기장, 야마기시(산안장) 일본연합노조회장과 회동을 거듭, 「자민·사회대연립」과 「자민·사회·공명·민사 대련립」운동에 노력했다고 알려졌다.
이같은 세지마고문의 역할을 두고 정·관·재복합의 「일본주식회사」를 사실상 움직이는 재계의 「사회당포위망구축」이라는 일본언론의 비판적 분석도 없지않으나 미일전쟁론을 앞세워 구국차원에서 보혁대연합을 꾀하자는 의미있는 원로의 목소리로 평가받고도 있다.
지난1월 한국의 3당합당이 극적으로 이루어진 후 일본언론은 이 정계개편에 자민당을 모델로 했다고 해서 화젯거리로 삼더니 최근 김영삼-박철언불화설을 두고는 『일찍부터 예견된 내분』이라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세지마고문의 「보혁대련립」과 같은 대구상에서 태어난 민자당이라면 사소한 감정(?)이나 헤게모니쟁탈전으로 비쳐지는 오늘과 같은 당내분은 하루빨리 종식시켜야 할것 같다.
오늘의 경제대국·세계부국인 일본과 같은 나라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이때 우리나라 여당의 집안싸움은 결국 국민을 불안케하는 요인으로밖에 작용치 않을 것이다. 【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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