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변의 역사 다 지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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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동북공정은 한건주의로 자리 잡는가? 관련 보도가 하나 나오면 우 몰려갔다가 금방 잊는다. 그러는 사이 중국은 단대공정을 끝내고 탐원공정을 가동 중이다. 왜 우리 문명의 뿌리가 위태롭다고 하는가?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東北工程.2002~2006)은 사실상 올해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동북공정의 노림수가 단순히 고구려사를 빼앗으려는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긴장감은 더하다. 이름하여 탐원공정(探源工程). 이는 2003년 시작돼 종료 연도는 미리 정하지 않은 상태로, 아시아 동북지역 고대문명 전체를 자신들의 것으로 삼으려는 문명사적 침략이다. 한마디로 이는 중국문명의 기원을 추적해 한국을 포함한 동북지역 전체 고대문명을 중국사에 편입하다는 것이다.

중국의 탁록 삼조당에 있는 삼황제 동상(왼쪽부터 치우, 황제, 염제). 중국은 역사를 끌어올리면서 동이족의 치우는 제외하고 황제와 염제에 대한 부분만 사실화 시킨다. (사진 권태균)

"고구려인은 조선인이 아니다.고구려인은 은(殷.商) 계통의 사람으로 확정됐다."

이는 최근 중국이 바꿔 단 지린(吉林)성 지린(吉林)시의 고구려 용담산성 안내 간판 내용의 일부다. 쉽게 말하면 고구려인은 중국의 고대국가인 하.상.주(夏商周) 3국의 하나인 상의 후손이라는 주장이다. 고구려인이 동이(東夷)족의 하나인 예맥(濊貊)계라는 기존 학설을 뒤엎고 나선 것이다.

소수의견이 주류학설로 급부상

흐름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이는 그리 새롭지 않다. 동북공정을 주도해 온 중국 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이 2003년 펴낸 펴낸 <고대 중국 고구려 역사 속론>에서 이미 그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고구려 민족은 염.황(炎黃) 씨족에서 유래했다"며 "하.상.주 단대공정(斷代工程)에서 공포한 '하.상.주 연표'에 근거하면 고구려인이 은.상(殷商) 씨족에서 분리된 것은 기원전 1600~1300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을 번역 중인 서길수 서경대 교수의 말을 옮겨 보자.

"고구려 민족이 은의 후손이라는 주장은 중국 내 고구려학 전공자들 사이의 소수의견으로 흘러다녔다. 이 책의 편집에 참여한 겅톄화(耿鐵華.58) 퉁화(通化)사범대 고구려연구소 부소장이 그 대표적 학자다. 이런 소수의견이 단대.탐원공정과 맞물리면서 학계 주류 학설로 떠오른 것이다."

탐원공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단대공정은 또 무엇인가? 정확히는 '하.상.주 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 1996년 시작돼 2000년 11월9일 완료를 선언한 '거대 중국 만들기' 역사 프로젝트다. 역사학자.고고학자.천문학자 등 각 분야 전문가 200명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년의 작업을 거쳐 중국 역사학계는 전한시대의 사가 사마천조차 포기해 버린 하.상.주 3대 왕조의 연대를 확정했다. 하왕조는 기원전 2070년에 시작된 것으로 결론 내렸고, 상왕조는 기원전 1600년 무렵에 건국했다는 학설이 만들어졌다. 또 주왕조의 시작은 기원전 1046년으로 각각 설정됐다.

한마디로 단대공정은 현재의 중국 영토 안에서 일어난 모든 문명을 중국의 것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다. 동북공정은 서북공정.서남공정과 함께 단대공정을 지역별로 나눠 구체화하는 일종의 '실행 프로그램'이다. 동북공정의 예를 들면 만주의 고구려 유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하고 한반도와 이어지는 역사유물은 물론 백두산의 의미까지 지우는 작업 등이다.

중국은 이를 더 강한 이론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2003년 새로운 공정을 추가했다. 바로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 약칭 탐원공정이다. 프로젝트 매듭 연도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과거의 예로 봐서 5개년, 즉 2007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산화.전설까지 역사 영역으로 포섭

탐원공정은 글자 그대로 '중화문명의 시원을 캐는 계획'으로, 궁극적 지향점은 신화와 전설을 역사 영역으로 포섭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중국'이라는 실체를 무려 1만 년 전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중국 당국은 얼마 전 산시(山西)성 샹펀(襄汾)현 타오쓰마을(陶寺鄕)에서 영국의 스톤헨지보다 건립 연대가 500년이나 앞선 4,100여 년 전의 세계 최고(最古) 천문대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이 유적이 요순(堯舜)시대의 흔적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 심지어 2002년 중국 후난(湖南)성 융저우(永州)시 닝위안(寧遠)현에서 발굴된 1만 년 전 대형 고분이 순(舜)임금 무덤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가 산시성 샹펀현과 허난(河南)성 신미(新密).덩펑(登封)시 등을 중심으로 시행되는 것은 이곳이 한족(漢族)의 조상인 화하족(華夏族)이 활동했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와 직접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동북공정은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거대하게 추진하는 '단대공정'과 그것을 계승한 '탐원공정'과 맞물려 있다. 따라서 동북공정에만 매달려서는 중국의 거대한 '자국 역사 키우기' 및 '주변국 역사 지우기'에 대응하기 어렵다. 나무에 매달리다 숲을 보지 못하는 꼴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한만선 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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