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는 중국 일부 아니다" 당나라 때 이태백 기록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우리에게 이태백(李太白)으로 익숙한 중국 당나라 시선(詩仙) 이백(李白.701~762.얼굴)이 발해를 중국이 아닌 독자적인 국가로 기록했다는 내용의 논문이 최근 공개됐다. 이는 동북공정을 주도하는 중국이 발해는 당나라의 변방정권이라고 주장해온 것과 배치된다.

홍콩 넝런(能仁)서원의 한국학과 김광석 교수는 18일 자신의 발해사 연구논문인 '발해족의 형성과 그 사회형태연구'에서 "발해는 당나라의 이백도 외국으로 인정한 명백한 한민족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1991년 이 논문으로 홍콩 위안둥(遠東)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그동안 한국 학계에 이 논문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논문에 따르면 발해국 건국의 주도 세력은 말갈족으로, 이들은 고대 한민족에 속한다. 발해국이 건국되던 6~7세기 초 중국 지린(吉林)성 등 동북지방에 7개의 말갈족 부족이 있었는데, 한민족의 원류인 예맥계가 가장 강성했으며 발해 건국의 중추 세력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고구려가 멸망하기 전에 이미 발해를 세웠으며 이후 고구려 유민들을 흡수해 중국 북방지역에 한반도의 7배나 되는 넓은 영토를 장악했다. 나라 이름에도 국(國)자를 넣어 자주 국가임을 분명히 했다.

발해국은 한자를 사용하면서 한글의 원형이 된 가림다(加臨多)라는 독자적인 문자를 만들어 혼용했다. 특히 발해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고 34차례에 걸쳐 일본에 사절을 파견하며 외교활동에도 주력했다.

이 때문에 당나라 이백의 시문집 '옥진총담(玉塵叢談)'에서 이백은 발해를 고려(고구려)나 백제로 부르며 한민족의 독자적인 국가임을 인정했다. 이백은 말갈어에 정통해 발해와 중국 간 외교문서를 번역하기도 했다. 이백의 혁만서(蠻書)에도 당시 당나라 사람들이 발해를 고려나 백제로 불렀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에 대해 발해사를 전공한 한규철 경성대 교수는 "이런 사실은 아직 한국 학계에 소개되지 않았으며 관련 사료를 확보해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 학자들도 발해를 중국 역사로 보는 데 부정적이다. 일본 역사학자 쓰다 소기치(律田左右吉)는 '발해사고(渤海史考)'를 통해 발해국의 전신은 말갈 7개 부족으로 이 중 속말말갈이 주축이며 이들은 고구려와 당 문화를 수입해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한 나라였다고 주장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서울=장세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