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베이비붐 세대 '은퇴 랠리' 본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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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3개국의 '베이비붐 세대'의 현역 은퇴가 올해 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들이 각종 직장과 산업 현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현상은 향후 10여 년간 이어질 전망이다.

세계 금융.서비스 시장은 '우려 반, 기대 반'으로 이를 주시하고 있다. 머릿수 자체가 많은 데다 이들의 경제력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특히 생산과 저축에 비중을 두던 장년층이 일시에 소비로 돌아서면서 금융과 서비스 부문의 지각변동이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미래에셋투신운용 김경록 상무('인구 구조가 투자 지도를 바꾼다'의 저자)는 "세 나라의 성장과 소비를 주도해온 베이비 부머들이 대거 은퇴하면서 특히 부동산 시장과 투자 자본 시장을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출발 총성, 이미 울렸다=은퇴 레이스의 출발선엔 미국 베이비 부머들이 제일 먼저 올라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세대(1946~54년생)인 이들은 올 하반기 이후 일선에서 물러나기 시작한다. 이어 내년에 환갑을 맞는 일본의 '단카이(團塊:1947~49년생)' 세대 역시 2007~2009년 사이 대거 퇴장한다. 이들보다 다소 젊은 한국의 베이비 부머(1955~63년생)들은 조금 여유가 있는 편이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연구위원은 그러나 "한국 베이비 부머의 은퇴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앞당겨질 것"이라 관측했다.

외환위기 이후 은퇴 시점이 매우 빨라졌다는 근거에서다. 2005년 기준으로도 실제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의 나이는 법적 정년보다 낮은 53세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르면 2010년, 늦어도 2015년을 전후해 은퇴 시기가 집중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 낙관과 비관 엇갈려=몇 년 전만 해도 일본 단카이 세대는 부동산 투자 탓에 '10년 불황'의 주범 격으로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이들이 향후 경제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주력부대'가 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근거는 이들의 풍부한 개인자산이다.

일본 덴쓰(電通) 소비자연구센터 등에 따르면 단카이 세대가 챙길 퇴직금만 50조 엔(약 400조원)에 이른다. 골드먼삭스도 "안락한 노후을 즐기려는 단카이 은퇴층의 소비가 2005~2010년 매년 국민총생산(GNP)을 해마다 0.4%가량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에선 낙관과 비관이 엇갈리고 있다. 당장 미국 베이비 부머들이 달궈놓은 부동산 시장이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지가 큰 관심사다. 매킨지 컨설팅은 "고령화에 따른 노후 자금 수요 등으로 향후 20년간 주요 국가의 금융자산이 31조 달러가량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놨다.

다소 시차는 있지만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투자증권 박천웅 전무는 "노후 대비에 본격 나서는 베이비 부머들로 인해 향후 10년 이상 한국도 80~90년대 미국처럼 '자산 투자 르네상스 시대'가 펼쳐질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미국 베이비 부머들이 90년대 노후 대비용으로 뮤추얼 펀드 투자에 대거 나서면서 미국 펀드시장은 10년 만에 7배 이상 커졌다. 미래에셋 김경록 상무는 "최근 노후용 자금이 몰려 있는 사모펀드 등이 장기 투자에 나서면서 10~20년 만기 국채 등 장기채 시장도 활성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한국은 더 우울=한국 베이비 부머들은 상대적으로 가장 미래가 암울한 편이다. 부족한 노후 자금 탓이다. 무엇보다 전체 자산의 80% 이상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자산 구조가 발목을 잡고 있다. 연금 등 사회 안전망도 턱없이 부실하다. 게다가 자녀 교육 및 결혼 비용 부담은 미.일에 비할 수 없이 크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연구위원은 "이들의 노후 소득 보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은퇴를 전후해 소비 위축은 물론 세대 간 갈등 등 사회 불안이 촉발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또 LG경제연구원 이철용 연구위원도 "베이비 부머들이 한꺼번에 노후 자금 마련에 나설 경우 부동산 시장 위축과 이에 따른 자산 디플레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 도대체 누구기에=미국 베이비 부머는 전체 인구의 30% 안팎인 7700만 명을 헤아린다. 1인당 평균 자산은 약 86만 달러(약 8억2000만원)에 달한다. 680만 명으로 추산되는 일본의 단카이 세대 역시 미국 못지않은 재력을 자랑한다. 단카이 세대의 비중은 전체 일본 인구의 5%를 차지한다. 일각에선 이들 단카이 세대가 향후 일본 소비의 50% 이상을 주도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한편 한국의 베이비 부머들은 압축 성장 시대를 주도하며 이른바 '마이 카, 아파트 붐' 시대를 열었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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