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살림(정치와 돈: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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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쓸곳 무진장… 세비는 “새발의 피”/여는 지역유지ㆍ후원회가 「돈줄」/외유때 여비핑계 용돈조달도
국회의원이라고 씀씀이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의원개인이나 정당에 따라 정치자금의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런 대가없이 정치인에게 돈을 건네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때문에 정치자금은 영향력있는 정치인이나 정당에 몰리게 마련이다.
『국회의원에게 당선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입니다. 노인회 간부 서너명이 절 만나자고 하더군요. 노인정을 개축하고자 하니 지갑에 있는 돈중에 천만원만 내라는 거예요. 그때 제지갑에 7만원이 있었습니다. 국회의원이 되면 땅에서 돈을 파내 쓰는 줄 아는 모양이에요. 심지어 가까운 친척까지 그런 소리를 할때엔 야속하다 못해 환멸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입당파 재야인사로 13대총선에서 금배지를 달게된 평민당소속 L의원의 푸념이다.
그는 국회의원 2년남짓에 오히려 3천만원의 은행빚만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자금씀씀이를 보면 지구당사무실 임대료및 전기ㆍ전화요금과 유급사무원 급료등 지구당사무실 경비로 2백만원,각종 경ㆍ조사의 「꽃값」이 2백만원,당비 50만원,각종 단체나 모임에 내야하는 찬조금등 매달 5백만원에서 6백만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세비는 보너스를 포함해 월3백여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L의원은 지금까지 이같은 씀씀이를 유지해 왔다.
특히 봄ㆍ가을 결혼ㆍ향락철은 「꽃값」과 찬조금이 배이상 늘어나 가난한 의원들에게는 고통의 계절이라고 한다.
이밖에 연말연시의 연하장,1년에 두세차례 만드는 의정보고서등 유인물에만 3천만원이 추가로 필요해 자금사정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설명이다.
『중앙당에서 1년에 한두차례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많게는 2백만원 적게는 1백만원 정도일 뿐이죠. 나머지는 대부분 중학동창들한테 기십만원씩 얻어쓰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니 은행빚이 없을 수 없죠. 지역구에 있는 은행에서는 거의 모두 돈을 빌려다 썼습니다.』
물론 이 L의원의 경우는 사실상 「최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형편이다.
같은 당의 학벌좋고 연줄많은 재선 K의원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낫다.
『어쩌다 취직사례비도 조금 있고 생각지도 않은 독지가들이 3백만∼4백만원씩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기업하는 동창이나 친척들이죠. 휴가철이나 추석ㆍ연말에 대기업에서 몇백만원씩 주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밀린 꽃값등을 갚아 나갑니다. 그러나 여당의원들처럼 꾸준히 안정되게 돈을 얻어쓰는 데가 있지는 못합니다. 정국이 경색되면 그나마 한두푼 갖다주던 곳도 끊기는 경우가 많지요.』
K의원은 또 1천만원이상의 이권에 개입하면 관계기관에 약점을 잡히게 돼 야당의원의 경우에는 쉽게 손을 대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의원들이 외국여행을 자주 하려는 이유는 여비를 핑계로 이곳저곳에서 용돈을 좀 얻어쓰자는 것입니다. 실제로 선거이후의 첫 외유는 선거빚을 갚기 위한 의도도 적지 않습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의원들이 돈을 써야 할 곳은 대부분 비슷하다.
다만 야당의원들보다 여당의원들의 씀씀이가 2배이상 클 뿐이다.
재선의 K모의원의 경우 지구당유지비가 5백만원,「꽃값」등 체면유지비가 7백만∼8백만원등 매달 1천5백여만원이상을 쓰고 있다. 그나마 이런 정도는 정국이 편안할 때고 중평ㆍ공안정국등 사람모아 홍보해야 할 때라면 사정은 2배이상 달라진다고 한다.
세비와 월3백여만원의 중앙당 지원으로는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여당의원들의 돈줄은 대개 지역구내에 살고 있는 여유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구당의 부위원장(10명안팎)ㆍ고문및 구정자문위원과 청소년선도위원등의 직함을 갖고 있는 50∼1백명정도의 스폰서를 갖고 있다. 스폰서의 대부분은 건물임대업을 하거나 중소기업규모의 자영업자들이다.
이들은 특정이권과 관계없이 자금을 준다하더라도 결국은 준만큼 기업운영과 여러면에서 혜택을 받으려한다. 이들에겐 지역구의원이나 여당 지구당위원장과 돈을 주고받는 사이임을 소문내는 것이 관내 경찰이나 세무서ㆍ구청에 세과시 효과를 가져와 사실상 적지않은 혜택을 보게 된다.
여당은 또 요즘 지구당별로 개인후원회를 만들기도 한다.
서울의 경우 동별로 15∼30명 규모인데 지역내의 제과점주인에서 부동산업자까지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이같은 사정은 원내지구당이나 원외지구당이나 비슷해서 최소한 월2천여만원이상이 모여진다는 게 관계자들의 계산이다.
50여억원의 빌딩으로 월2천만∼3천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사람에게 1백만∼2백만원은 어렵지 않은 돈이다.
따라서 여당의 경우 서울등 대도시의 지구당이 지방의 지구당보다 낫다고 한다.
여당의원들은 이밖에 혈연ㆍ지연ㆍ학연등을 엮어 지역구와 관계없는 후원조직을 만들기도 하는데 서울의 중량급 L모의원이 이부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소문이다.
여당의 이 모든 자금동원수법은 현행법상 불법이다. 그래서 노출을 극히 꺼리는 형편이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그 차이도 크다.
여야의원들은 모두 3당통합이후 사정이 전보다 많이 어려워졌다고 하소연이다. 정계의 구조가 재편되면서 자금의 흐름도 구조적인 변화ㆍ조정기를 맞았기 때문이다.<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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