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그린 전 NSC 보좌관 "동맹, 상처난 듯 보이지만 상당히 건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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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현지시간)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잠시 기자들과 만나고 있는 동안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멀찍이 떨어져 앉아 회견 내용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라이스 장관 바로 뒤에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와 조슈아 볼턴 백악관 비서실장,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 등 이날 회담에 배석했던 주요 인사들이 나란히 서 있다(왼쪽부터). [워싱턴 AP=연합뉴스]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던 한.미 정상회담이 끝났다.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5일 새벽 정상회담 직후 다소 생소한 형식의 '언론 회동(press availability)'을 통해 회담 결과를 발표했다. 두 정상의 외교안보참모들은 각각 "회담 결과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들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를 점검했다.

국내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총론에선 '긍정', 각론에선 '부정' 평가를 내렸다.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대북정책과 미래지향적 한.미 동맹 등 큰 틀에선 의미 있는 합의를 이끌어 냈으나 구체적 이행 과정에선 한.미 간 갈등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특히 두 정상이 대북 인식과 북핵 해법에 대한 심각한 차이를 덮어 놔 '미완(未完)의 회담'일 수밖에 없었다고 진단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워낙 걱정이 많았던 회담인데 일단 외형상으로 두 정상이 균열된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 자체만으로도 성과가 있는 회담이었다. 노 대통령은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해 이번 회담을 외견상 안정적으로 이끌려고 노력한 것 같다. 임기가 1년4개월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미국과 갈등을 보일 경우 레임덕 방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한반도 핵심 현안인 대북 문제를'외교적 수사'로 봉합시켰기 때문에 앞으로 한.미가 실무협의를 통해 북한의 6자회담 참여를 구체화하지 않으면 한.미 갈등의 불씨가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미국은 '채찍'을 강조하고 있으나 한국은 '당근'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결국 한국은 북한의 요구와 미국의 요구를 한 틀로 묶어 해결하는 '패키지 딜'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은데 제대로 풀려나갈지 의문이다. 전작권과 관련해선 두 정상이 논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에선 전작권 이양이 '불감청 고소원(不敢請固所願:감히 청하지는 못하지만 본래부터 원하고는 있음)'이기 때문이다.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미주연구부장=양국이 인내심을 발휘해 북한의 6자회담 참여를 위한 '공동의 포괄적 대응 방안'을 마련키로 하고, 미래지향적 동맹에 합의한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으로 대북정책을 조율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이르면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가 열리는 10월 전에, 늦어도 미국의 11월 중간선거 전까지 한.미가 포괄적 대응 방안을 확정해 북한에 제시하지 못하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견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정부가 전작권 환수를 계기로 북한과 평화체제를 얘기하자고 할 경우 한.미 동맹의 밑그림이 꼬일 수 있다. 한반도의 현안인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체제를 논의해야 한다. 대북 추가 제재는 한국의 입장을 고려해 미국이 시기를 늦춰 준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전작권 이양이고, 안정적으로 전작권이 이양되기 위해서는 한.미 동맹의 신뢰가 굳건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북한에 시간을 준 것이다.

◆김성철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전반적으론 한.미 동맹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재확인하면서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 합의한 의미 있는 회담이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와 경제제재를 추가로 발동할 가능성이 있어 이번 회담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로 이어질지 의문스럽다. 미국과 한국이 북한에 대해 '패키지 딜'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는데, 구체화될지 불확실하다. 미국이 경제제재를 완화하는 제스처를 취하지 않으면 6자회담이 본 궤도에 오르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6자회담 재개는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 여부에 성패가 달려 있다. 미국이 6자회담 개최를 위해 북.미 양자회담에 나서더라도 근본적인 대북정책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성과를 만들어 내기 어렵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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