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후들거렸지만 아이들 생각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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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제자 박지은 양, 이소정 양, 박지숙 교사, 박 교사의 17개월 아들 최수아 군. 박 교사는 제자들을 학교에 맡겨진 자신의 자녀라고 말했다.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 들더라구요. 자식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그랬을거예요."

지난 6일 고속도로에서 41명의 초등학교 수학여행단을 태운 고속버스가 앞서 가던 고속버스와 화물차를 잇따라 추돌하는 대형 사고가 있었다. 1명이 숨지고 6명이 중상을 입었지만 나머지 학생들은 가벼운 상처만 입었다.

고속도로에서 달리던 버스가 이중추돌을 일으키고도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데는 안전띠의 덕이 컸다. 안전띠를 매지 않았던 운전사는 유명을 달리했지만 안전띠를 착용했던 학생들은 목숨을 잃지 않았다.

평소'안전띠는 생명띠'라는 교육을 강조했던 박지숙(여.30.덕정초등)교사는 이날도 학생들을 인솔하며 안전띠 착용을 신신당부했다.

박 교사는 사고가 일어나기 10분 전에도 아이들의 안전벨트를 일일이 점검했다.

"직감이 이상했어요."

그는 사고가 나기 바로 전 버스 운전기사의 움직임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버스가 한참 달리고 있는데 기사님이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드는 게 보였어요. 순간적으로 차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죠.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 하는 순간 버스가 앞 차와 '쿵' 하고 부딪쳤어요."

버스가 1차 추돌을 한 뒤 박교사의 시야엔 순간 아무 것도 안들어왔다. 2~3초나 흘렀을까. "정신을 얼른 차리고 앞을 보니 운전석의 운전사는 이미 버스 밖으로 퉁겨져 나갔어요." 달리던 속도를 못 이긴 버스는 운전사도 없이 200m가 넘는 거리를 무섭게 달렸다.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양쪽 손으로 기둥을 잡은 상태에서 제 몸도 못 가누겠는데 아이들 비명만 들렸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려 말이 않나오는거예요. 있는 힘껏 '꼭 잡으라'고 소리쳤어요. 무섭다는 걸 느낄 새가 없이 급박한 순간이었어요."

버스는 이어 앞서가던 11톤 화물차를 또 다시 들이 받은 뒤에야 멈췄다. 지옥같은 몇십초였다. 안전띠 덕에 차체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는데도 학생들은 좌석에 몸을 고정시킬 수 있었다.

"제가 아무리 안전띠를 매라고 해도 아이들이 순종하지 않았다면 피해가 컸을 거예요. 그 급박한 순간에도 제가 꼭 잡으라고 소리친 걸 기억하고 있더라구요. 착한 우리 반 아이들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17개월 된 아이의 어머니인 그는 제자들을 학교에 맡겨진 자신의 자녀라고 말했다. 부모가 자식을 지키는 일과 다름 없는데 칭찬 받을 일로 비쳐져 부담스러워하는 속내도 밝혔다.

"저 뿐만 아니라 교사라면 모두들 그렇게 하셨을 거예요. 관심을 가져주시는게 오히려 부끄럽습니다. 저보다는 사고 현장에서 도움을 주신 다른 분들이 더욱 훌륭하세요. 그분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현재 부상 정도가 심한 4명의 학생들과 가정에서 관찰 치료 중인 학생들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박 교사와 같은 병원에 입원해 치료 중이다.박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학급의 급훈은 '참사랑'. 박 교사는 "아이들과 서로 사랑하고 늘 하나라는 생각을 함께 하는 게 보람"이라고 말했다.

김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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