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내생각은…

공정위가 제역할을 하려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거래법 이외에도 하도급법.표시광고법.약관규제법.가맹사업거래법 등 9개의 법을 운영하면서 매년 4000건 이상의 불공정거래 사건에 대한 심결 업무를 담당한다. 이런 공정거래위원회가 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선 선택과 집중의 원칙을 살려 인력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위원회의 역량은 독점규제, 카르텔 제한, 기업결합 및 소비자보호 등에 관한 정책 수립.집행, 주요 법 위반 사건 처리, 시장에서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각종 규제 개혁에 집중시키자. 그러나 하도급.가맹사업거래 분야나 상당수 공정거래법 위반 신고 사건와 같이 이해 당사자 간 민사분쟁에서 제기되는 사건들은 분쟁 조정 차원에서 위원회 밖에 한층 종합적.체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업무 혁신의 일환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

전문성이 강한 업무를 수행하는 공정위는 어느 부처보다도 연구기능 전담 조직이 필요한데 아직 없다. 말도 많은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비롯해 지주회사제도.기업결합 등 대기업 관련 정책 연구만 해도 전경련의 한국경제연구소를 비롯해 대기업 연구소에선 활발하게 이뤄지지만 공정위는 이를 검증하거나 대안을 마련할 연구조직이 없다.

공정위 직원의 전문성 제고와 직무수행 능력 향상을 위해선 내실 있는 전문교육이 필요하지만 현재의 교육은 미흡한 점이 적지 않다. 국경을 초월한 기업 활동의 증가로 각국의 공정거래법 역외 적용이 확대됨에 따라 외국에서 우리 기업에 대한 제재가 늘어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선 사업자에 대한 심도 있는 교육이 절실한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런 일들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한국공정거래진흥원'(가칭)의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설립 근거는 국회에 제출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포함돼 있다. 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선 한국공정거래진흥원 설립이 시급하다는 공정위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다만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한국공정거래진흥원 기능이 기존 조직인 한국공정경쟁연합회와 일부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 이는 말썽의 소지가 있으므로 중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합당하다.

본래 한국공정경쟁연합회는 민간업체의 자율적인 공정경쟁 풍토 조성과 공정거래 정책에 관한 대정부 건의 등 정부.업계 간 교량 역할 수행을 위해 설립된 기구다. 회원사의 회비로 운영되는 민간조직이므로, 앞으로는 순수하게 민간 차원에서 사업자에 대한 공정거래 정보.자료 제공,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 보급.확산, 민간업계의 공정거래정책에 관한 대정부 건의 등의 기능을 수행토록 하자. 한국공정거래진흥원은 공정위 소관 법령 관련 분쟁 조정, 공정거래제도.정책 연구, 교육.홍보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쪽으로 양 기관의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요즈음 정부 부처들이 산하기관을 늘리려 하는 등 경쟁적으로 몸집 부풀리기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불필요한 오해 불식을 위해서라도 양 기관이 공조는 하되 직제상 기능은 중첩되지 않도록 명확하게 구분 짓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성환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