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잃은 삶의 위기/진덕규(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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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유럽의 1900년대 직전의 시기는 소란과 절망이 교차하는 기간이었다. 산업사회의 위력은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계급대립도 격화되기 시작하였다. 도시화의 현상은 농촌공동체의 연대성에 의하여 삶의 의미를 향유하였던 수많은 농민들을 하루아침에 도시의 산업노동자로 전락시켰는데,이들에게 도시는 한낱 비정한 공간에 불과했으며,기존의 전통이나 가치관 같은 것도 무의미하게 생각되었다.
민주주의와 자유가 주장되었고 의회가 구성되었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이들과 무관한 것이었다. 의회에 진출했던 직업적 정상배는 국민의 이름을 내걸면서 사리사욕과 자기 정당의 권력장악에만 부심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일의 기대조차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마침내 인간적 수치심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일종의 윤리적 무정부 상태로 좌초하게 되었다.
○집권욕에 인간성 상실
독일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시기의 독일에서는 랑그벤 같은 지식인이 있었다는 정도일 것이다. 랑그벤 같은 지식인이 있었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독일의 새로운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크게 유명한 인사나 대철학자가 아닌,한낱 무명의 집필가에 불과했으나 1890년에 익명으로 한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그 당시 좌초하였던 독일인의 정신을 일깨워준 역사적 충격이었다. 그가 최초로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이유는 자기 아들이 보여준 정신적 방황 때문이었다. 젊은이다운 패기보다는 방탕과 치기,그리고 유약함에 빠져 자성과 헌신을 외면한 채 부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에 어버이로서의 분노감과 하나의 기대감을 표현하기 위해 엮은 것이 바로 『교육자로서의 렘브란트』라는 책자였다.
『교육자로서의 렘브란트』의 기본적 주제는 『조잡한 인위성과 기교에서 벗어나 자연의 자발성과 소박함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인간다움의 새로운 결단』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단조로운 도시생활과 개인적 이익추구에 매몰되어 인간적 미덕까지 소진시켜버린 사람들에게 모두가 함께 어울려 지냈던 이전의 촌락 공동체적 연대성을 추구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자연의 소박함에 회귀
즉,새로운 독일의 가능성은 소박한 농민들을 기반으로 하는,다시 말하면 가장 진실된 농민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민족성을 확립하는 데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책의 제목으로 렘브란트의 이름을 붙였던 까닭은 렘브란트야말로 가장 순수하게 독일인의 혼을 예술로 표현한 인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진정한 독일적 전통을 바탕에 깔고 독일의 민족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독일인다운 민족적 헌신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그의 주장은 당시 독일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젊은이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공감하였던 독일의 젊은이들은 더이상 좌절과 무절제한 소비,그리고 무의미한 모방이 가져다주었던 정신적 폐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자기 결단을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의지는 급기야 독일민족의 피와 조국의 산야에 입맞춤하는 이 혼과 흙의 민족의지로 발전될 수 있었다.
당시의 이러한 상황을 독일의 교육자인 킨트는 『추종적 역할만 강요당했던 청년들이 마침내 자기 자신을 의식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인습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활을 창조하려 했고,청년의 순수성에 적합한 삶의 방법을 열망하게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청년들은 스스로를 자각하게 되었으며,겸손의 미덕을 중하게 여겼고 환상적 관념의 허울을 걷어버리고 성실한 실천을 중하게 여겼다. 그리하여 청년들은 독일 민족의 내일을 담지하게 되는 가능성의 폭을 넓혀갈 수 있었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독일 청년운동은 그 뒤 국가주의의 성격으로 변모되는 한계도 없지 않았지만,엄격한 의미에서 독일의 국가주의는 독일의 정치사회적 상황 때문에 빚어진 결과이지 단순히 독일 청년운동의 극단적인 귀결로만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독일의 1900년대 전후의 시기와 한국의 1990년대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격이 있다. 즉,한쪽에서는 정신적 자기 각성에 의하여 민족의 미래를 다짐했던 역사성을 보여주었으나,다른 한쪽에서는 일정한 지향이념조차 상실한채 마치 표류하는 것과 같은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사회는 단순히 정치적 구호로만 제창되는 지향이념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민주화의 대장정이라는 말만으로도 뜨거운 국민적 열정도 모을 수 있었고 권위주의 체제도 붕괴시킬 수 있었으나 참된 민주개혁의 이정표와 이념은 아직도 서로 다른 주장의 틈바구니에 휩싸여 있을 뿐이다. 정의로운 가치배분을 주장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민족의 통일이 초미의 과제로 되었지만 통일 이후의 민족사회 지향에 대해서는 그 어떤 설명도 들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민족의 현실과 미래지향의 이념이 국민적 합의로 설정되지 못했을 때 국민적 일정은 결집될 수 없을 것이며,이상과 꿈을 상실한 삶의 현실성은 단지 집단적 광기와 극단적 이기심의 포로로 전락될 뿐이다. 거리에서 마주치게 되는 많은 사람들은 모두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의욕과 열정이 올바른 출구를 찾지 못하여 오히려 심한 좌절감에 젖어 있다면 그러한 현상이야말로 우리시대의 가장 큰 아픔일 것이다.
○미래지향의 사회 돼야
한낱 자본주의적 상업문화의 모방열기에 사로잡혀 조국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역사의 가능성조차 외면해 버리는 젊은이들이 있다면,그리고 단지 소유가치와 향락의 탐닉에 일상성을 매몰시켜버린 어른들의 무한대적 탐욕이 쌓여간다면, 우리가 그처럼 기대해온 민주개혁이나 조국통일을 한낱 정치가들의 공허한 주장으로 남겨두어야 할는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사회는 1900년대의 독일에서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혼과 흙의 이념』을 정립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그러한 이념에 의해 인격적 공동체를 실현할수 있어야만 세속적 물질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진정한 한국 정신도 구현될수 있을 것이며,그것만이 수치심을 잃어버린 암울하고 살벌한 대지로부터 벗어나 인격적 기품까지도 함께 기릴 수 있는 참된 인간사회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이대교수ㆍ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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