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와 파업(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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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이나 영국의 시위현장에는 으례 「피킷 라인」,「폴리스 라인」이라는 것이 있다. 피킷 라인은 피킷을 든 데모대는 이 선까지만 오고 더 이상은 넘어가지 말라는 표시다. 폴리스 라인도 마찬가지다. 그 선을 넘으면 경찰이 잡아가겠다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다.
라인(선)이라는 것도 말이 그렇지,철조망이나 어마어마한 쇠파이프가 아니다. 어떤 경우는 비닐 끈도 있고,흔히는 널판자로 만든 차단장치다. 군중이 밀어붙이면 금방 부서지고도 남는다.
그러나 데모대는 마땅히 그것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경찰과 얼굴을 맞대고 야유는 할망정,폴리스 라인을 넘으려 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월남전반대 시위를 할 때도 데모대는 경찰의 총구에 장미를 꽂는 짖궂은 장난은 해도,죽자 사자 덤벼드는 일은 드물었다. 살벌한 시위현장에서도 오랜 민주주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불문의 신사협정같은 것이 존중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병원 노조원들이 데모를 하면서 새 환자를 받는 것은 막았지만 기존환자들은 외면하지 않았다. 제한적인 간호는 했다. 인륜의 마지막 선은 지킨 셈이다. 지하철 파업이 무작정 오래 계속되지 않은 것도 결국은 시민의 원성을 사서는 안된다는 자각의 일면이 있었다.
아마 노사분쟁이 타결되는 순간,사장과 노조원이 부두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각박한 노사관계라도 사람의 훈기까지 식지는 않았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를 실망하게 만드는 일들이 벌어진다. 요즘 어느 아파트촌에선 관리인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을 하면서 보일러를 끈 일이 있었다. 엄동은 아니지만 요즘과 같은 날씨에 보일러 꺼진 아파트가 어떨지는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노인이나 병약자라도 있는 집은 얼마나 난감했을까. 아파트 사는 사람들은 남의 일같지 않다.
노사분쟁이 아무리 격렬해도 사람의 정리는 저버리지 않는,최후의 선은 존중되어야 한다. 어떤 명분도 사람이 모인 조직에서 사람다움을 포기하는 일을 합리화시켜줄 수는 없다. 보일러는 작은 일 같지만 인간의 가슴에 훈기를 주는 장치라는 생각을 하면 결코 작아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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