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혁명직전 사상통제의 실태 분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서평>
흔히 계몽사상이 프랑스혁명을「준비」했다고 일컬어져 왔다. 이미 혁명기부터 어떤 이는 그것을 기리기 위해, 다른 이는 그것을 비난하기 위해 혁명에서 이데올로기가 갖는 중요성을 지적해 왔다. 그러나 계몽사상과 혁명의 관계는 단지 혁명적 문서나 혁명가들의 연설에서 계몽사상의 주요한 개념이나 용어를 찾아내 그 의미의 변화를 추적하는 사상사적인 작업만으로 남김없이 밝혀질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당연하게도 혁명의 지도자들이「철학자」도 아니었거니와, 더욱 중요한 점은 혁명에 귀족이나 성직자 또는 부르좌와 같은 문화적 엘리트뿐만 아니라 문맹률이 매우 높았던 도시와 농촌의 민중계급이 광범위하게 가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계몽사상의 혁명」이란 문제는 불가피하게 계몽사상이 어떻게 전파됐는가, 바꿔 말하면 그것의 주요관념이 사회의 어느 층까지 침투했는가 하는「집단심성」의 역사, 곧 사회사적 전망을 요청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문제의식은 작업의 현장에서 그것에 걸맞는 새로운 사료의 발굴을 요청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바스티유문서」 라는 자료를 통해 그러한 문제의식을 구체화한, 저사의 표현을 빌리면 「문화전파의 사회학적연구」다. 주교수는 파리소재의 아르스날도서관에 보관돼 있는 「바스티유 문서」가운뎨 죄수 및 금서에 관한 자료의 분석을 통해 1750∼1789년간에 도서출판법의 위반으로 바스티유에 수감된 자들의 직업별 구성과 압수된 금서의 주제별 분포를 박진감 있게 보여준다.
사실상 이렇게 직접적인 1차 자료를 구사한 것만으로도 이 책은 우리서양사학계에 하나의 성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게다가 저자의 유려한 문체와 뛰어난 수사학은 전문적인 학술서적이 일반독자들에게 주곤 하는 딱딱한 인상을 거의 없애고 있으며, 죄수들에 관한 인용문은 혁명전 구체제의 「지하세계」에 대한 끈끈한 삶의 이야기를 거의 문학작품의 차원에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아 문학적 상상력이 사회적 상상력을 압도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를테면 수감자들에 대한 직업별분석은 그 자체만으로는 결코 사회사적 깨달음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구체제사회의 움직임, 곧 사회구성과 결부되지 않는 한 해석이 주어지지 않은 중립적인 자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럴 경우 그것은 결코 현실의 은폐된 부분을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다.
최갑수 <서울대교수·서양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