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계에도 변화 기미(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커진 사회당은 성숙된 대외관 갖길
18일 실시된 중의원선거에서 일본 유권자들은 리크루트 사건등 정계비리에도 불구하고 집권 자민당에 또다시 안정 다수의석을 안겨주는 동시에 일당 장기집권에 대한 견제세력으로 제1야당인 사회당의 의석을 늘려주었다.
집권당의 당초 우려와는 달리 자민당이 안정선을 확보한 것은 대다수 일본인들이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성장시켜준 자민당이 주도하는 정치ㆍ경제적 안정을 바라고 있는 동시에 아직 야당의 집권능력에 대해선 불안감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공명ㆍ민사ㆍ공산당 등 군소정당들이 현저히 퇴색하고 사회당이 급신장함으로써 90년대의 일본정치는 자민ㆍ사회당간의 본격적인 보혁대결로 펼쳐질 공산이 크다.
지난 55년 자유당과 민주당으로 갈라져 있던 보수 우익세력을 결집,35년간이나 장기집권의 신화를 창조해왔던 자민당은 총선을 앞두고 금권정치ㆍ파벌정치ㆍ리크루트 스캔들 등 갖가지 정치비리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자민당이 89년 참의원선거에서 야당에 참패하여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했고,이번 중의원선거에서도 의석수가 줄어든 것은 정치인들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젊은 유권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군소정당들의 세력이 현저히 감소한 것은 실용주의 바람이 불고 있는 국제적 분위기속에서 그들의 현실성 없는 이념이나 구호가 외면당한 결과다.
반면에 집권 자민당은 동구의 개혁바람을 최대한 이용,「체제의 선택」이라는 명제를 내걸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고 사회당은 정열적인 도이(토정)위원장의 인기에다 미약하나마 꾸준한 자체변신을 꾀하면서 보다 온건한 중도노선으로 접근함으로써 유권자들의 호감을 샀다.
자민당의 뿌리깊은 정치적 비리에도 불구하고 야당세가 과반수를 얻지 못한 것은 일본 유권자들이 집권당의 정치적 비리를 묵인했다기 보다는 야당의 집권능력에 아직 의구심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선거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가이후(해부) 내각의 앞날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일본 정계가 이번 총선결과로 나타난 보혁 양극화현상이 보여주듯 자민당의 시대적 변신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내 세력기반이 별로 없는 가이후총리로서는 다른 파벌을 설득해 90년대의 크게 변한 내외정세에 상응하는 정치개혁을 밀고나가기가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일본 재계가 자민당의 계속 집권을 일단은 환영하면서도 앞으로 상당한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하는 반응을 보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경제대국ㆍ군사대국으로 부상한 일본에서 앞으로 집권당과 비대해진 사회당이 어떤 방향으로 일본의 앞날을 펼쳐나갈지 주목할 것이다.
일본 총선결과에 대해 우리가 바라는 바는 탈냉전과 평화공존의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동북아에 일본의 보혁 양극화현상이 불안요인으로 작용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특히 친북한 성향을 강하게 띠어온 사회당은 이제 집권대체세력에 걸맞게 신중하고 국제적으로 책임있는 외교정책노선으로 방향을 조정하기를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