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고종 정원에서처럼 우리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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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덕수궁 정관헌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한 뒤 음식을 시식한 주한 외교사절들이 행사장을 나서고 있다. 조용철 기자

제인 쿰스 주한 뉴질랜드 대사의 남편인 팀 스트롱. 레게 헤어스타일과 한복 차림으로 뒷짐을 진 채 덕수궁을 걷고 있다.

무사 함딘 알티 주한 오만 대사의 부인 아팔 알 하다비. 히잡(이슬람 여성들이 쓰는 머리 수건)을 쓴 채로 입은 한복이 이채롭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세운 고종 황제(1852~1919)는 서양문물 수용에 적극적이었다. 나라의 발전을 위해선 서양문명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 대표적인 건축물이 덕수궁(당시 경운궁)에 있는 정관헌(靜觀軒)이다. 고종은 러시아 건축가 사바친에게 설계를 맡겨 1900년 정관헌을 완성했다.

정관헌은 고종이 가배차(嘉排茶.커피)를 마시고, 음악도 즐기며 대한제국의 개혁정책을 구상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또 고종이 당시 외교사절을 불러 연회(宴會)를 열었던 사교장 역할을 했다. 100여 년 전 급박했던 국제정세에서 고종이 휴식을 취하며 국가의 앞날을 고민했던 장소다.

그 정관헌이 4일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장소로 거듭났다. 문화관광부가 일본.독일.이집트 등 39개국 대사(대리) 부부를 초청해 한국 전통예술 체험 행사를 열었다.

◆ 100여 년 만에 부활한 역사="덩더꿍 장단을 여덟 번 치고 '얼~쑤'를 외쳐 보세요." 이날 오후 정관헌에선 사물놀이의 흥겨운 가락이 울려 퍼졌다. 주최 측이 선물한 오방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각국 외교사절 60여 명이 사물놀이 강사를 따라 신나게 꽹과리를 두들겼다. 외교사절들은 처음 쳐보는 사물놀이 장단에 연방 미소를 터뜨렸다. 또 국립국악원 사물놀이팀의 시범공연 시간에는 쉴 새 없이 꽹과리를 울리며 연주에 화답했다. 서울 한복판에 국가.민족의 경계를 넘어선 국악 한마당이 차려진 것. 과거 서양문물의 상징이었던 정관헌이 한국문화를 세계에 자랑하는 장소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연보라색 한복을 맞춰 입은 오시마 쇼타로(大島正太郞) 일본대사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영광이다"며 "한복의 색깔과 디자인이 너무 아름답다"고 말했다.

◆ 한류와 전통문화의 만남=이날 덕수궁은 전통문화의 축제장 같았다. 각국 대사들은 한양대 풍물놀이단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초가을 분위기가 묻어나는 고궁에서 한국예술을 만끽했다.

고종이 정무를 보았던 중화전(中和殿.보물 제819호)에선 태권도와 국악을 결합한 공연이 펼쳐졌고, 정관헌에선 국악합주곡인 '수제천(壽齊天)'과 판소리 '수궁가'가 연주됐다. 우리 전통차를 시음하는 자리도 준비됐다. 대중문화에서 시작된 한류 열풍이 전통문화에도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김명곤 문화부 장관은 "유서 깊은 정관헌에서 각국 대사들이 같은 옷을 입고 하나가 됐다"며 "우리 전통을 국내외에 알리는 자리를 정기적으로 열겠다"고 말했다.

박정호.조도연 기자 <jhlogos@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 정관헌=덕수궁에 남아 있는 근대 건축물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지어졌다. 서양과 한국의 건축양식을 결합한 독특한 형태로 2004년 등록문화재 제82호로 지정됐다. 8월부터 매주 토요일 일반에 개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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