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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너무 많아서 고민하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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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중국 해안지대의 번창하는 공업도시들에는 24시간 쉴새없이 각종 제품을 쏟아내는 제조업체가 수만 개나 된다. 그 회사들이 생산하는 정원용 가구, 브레이크 패드, 전등 같은 상품의 수출은 몇 주 뒤 새로운 역사를 만들 전망이다. 어느 회사가 미국에 수출하고 받는 달러가 중국의 외환보유액에 12번째 ‘0’을 덧붙이기 때문이다.

외환보유액 총액이 1조 달러를 돌파한다는 뜻이다. 수출업자나 수입업자는 그 거래의 의미를 깨닫지 못할지도 모른다. 세계 무역체계에 미치는 예측하기 어려운 충격만 없다면,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매달 약 170억 달러씩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중국 정부의 늘어나는 달러 비축은 오늘날 세계 경제의 가장 위험한 불균형을 상징한다. 미국은 중국 제품의 과다한 수입을 지속하는 동시에 그 수입 대금을 충당하려고 중국에서 막대한 돈을 빌려온다. 이 때문에 달러 가치가 계속 하락하면서 경제적 초강대국인 두 나라는 정면 충돌의 궤도를 달린다.

워싱턴의 정치인들은 중국 정부가 달러로 표시되는 위안화 가치를 평가절상하라고 요구한다. 중국 관리들은 자신들을 너무 다그치면 1조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의 투자처를 변경할지도 모른다고 암시한다. 보유 중인 미 재무부 채권을 팔아치우겠다는 은근한 협박이다. 그럴 경우 미국과 세계 경제는 침체될 가능성이 있다.

작년 위안화 평가절상 후 상하이 증권거래소에서 한 중국인 투자자가 시황판을 보고 있다. (자료사진=중앙포토)


미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던 로런스 서머스는 이런 현상을 ‘재정적 공포의 균형(balance of financial terror)’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이 아직 감지하지 못한 점이 있다. 이런 식의 균형은 점차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도 위협이 된다는 사실이다.

지난 25년간 미국은 누적되는 무역적자와 그것이 자국 금융 부문의 우월적 지위에 가하는 위협을 우려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도 자국의 무역흑자를 경계의 시각에서 보기 시작했다. 중국의 엄청난 달러 보유액은 중국 제품과, 그 제품을 사는 데 필요한 중국 화폐의 막대한 수요를 반영한다.

2005년 중반 중국 관리들은 외부 세계의 강한 압력에 못 이겨 인민폐(人民幣ㆍ위안화)의 가치를 2% 정도 평가절상했다. 그러나 그들은 위안화 평가절상을 지속할 경우 자국 제품의 수출 경쟁력 하락과 기업 도산 가능성을 우려한다. 나름대로 일리 있는 우려다. 그러나 전세계의 투기 세력들은 중국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쪽에 내기를 건다.

세계 시장은 위안화의 추가적인 평가절상을 불가피한 현상으로 본다는 얘기다. 최근 중국 국가통계국의 추샤오화(邱曉華) 국장은 이런 시각이 오늘날 중국 경제의 ‘핵심 문제’가 됐다고 경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공정하게 말해 중국은 실제로 세계적인 투기 자본을 상대로 싸우는 중이다… 이들 세력을 적절히 통제하지 않으면 중국의 국익이 손상되고 경제적 안보가 위태로워진다.”

중국 경제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아직은 개발도상에 있다. 그런 상황에서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으면서 매달 170억 달러의 수익을 소화해 내기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 돈은 꾸준히 국가 경제 속으로 흘러들면서 지난 2분기에는 1994년 이래 가장 높은 비율인 11.3%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경기 과열로 경제가 녹아내릴 위험마저 생겼다. 게다가 모든 해결책은 새로운 문제점을 낳는다. 예를 들어 중국은 중앙통제경제를 실시해 왔다. 단순히 은행들에 대출을 줄이라고 명령하거나 씀씀이가 헤픈 지방정부 관리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시장을 활용해 금융 부문을 개혁하려는 노력을 저해한다.

중국 정부는 금리 인상도 시도해 왔다. 이는 성장을 억제하지만 동시에 (중국 제품을 수입하는 구매자가 아니라 높은 금리 수익을 노리는 외국 투자자들로부터) 더 많은 달러를 끌어들이며 국내 수요를 약화시킨다. 미 스탠퍼드대 경제전문가인 로널드 매키넌은 중국의 수출 증대와 저평가된 위안화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덫에 걸렸다. 그런데 쉽게 빠져나올 길이 없다.”

중국 정부는 달러 유입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하려고 무척 노력한다. 이를 위해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은 시중은행들로부터 달러를 매입하고 위안화 표시 채권에 투자하도록 권장하며 시중은행들의 대출 한도를 축소한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은 도로와 부동산 등 고정자산에 쓰이는 투자가 2000년 이래 외환보유액과 나란히 급증해 온 현상은 우연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워싱턴 소재 국제경제연구소(IIE)의 니컬러스 라디 선임 연구원은 “중국의 투자가 6년 연속 실물경제 성장률보다 더욱 급격하게 증대해 왔다. 이는 성장을 위한 지속가능한 처방이 아니다”고 말했다.

중국의 달러 보유액 증대가 10년 전 시작된 금융 개혁 노력을 훼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당혹스럽다. 은행들을 보다 시장지향적으로 만들려고 중국 정부는 부채에 시달리는 국영기업에 빌려주는 정치적 목적의 대출을 금지하고 외국인의 소규모 지분 투자를 환영해 왔다.

또 은행장들에게는 경영상의 손실과 이익을 책임지게 했다. 그러나 인민은행은 동시에 시중은행들이 저금리의 위안화 표시 채권을 매입하도록 했다. 늘어나는 달러 보유액의 충격을 완화하는 데 동참하게 만들려는 의도다. 그러나 이는 시중은행들의 수익을 잠식시켰다.

규제 당국은 또 투기 자본이 위안화 평가절상 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막으려고 실질금리를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했다(현재 3% 미만이다). 그러나 그런 저금리 자금은 공장 신설과 부동산 개발 분야로 유입된다. 컨설팅 회사 매킨지의 최신 보고서는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중국의 국영기업들은 저금리 자금의 대부분을 흡수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양상은 중국의 금융체계 속에 부실 대출(nonperforming loan)이 많은 이유를 설명해 준다. 또 이는 중국 경제의 전반적인 생산성을 감소시킨다.

중국 정부는 위안화 가치를 높일 경우 추가적인 평가절상을 기대하는 심리를 조장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타당한 우려다. 스탠더드 차터드 은행 홍콩 지점의 지역경제 연구 책임자인 니컬러스 콴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그런 심리를 갖게 될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평가절상이 이뤄져 모든 사람이 이제는 위안화 가치가 충분히 올랐다고 생각할 때쯤이면 이미 심각한 곤경에 처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위안화 가치를 더 오랫동안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할수록 더 많은 자금이 한계투자(marginal investment)로 잘못 배분되고 금융개혁의 속도는 늦춰지며 금융계의 부실채권 비용은 늘어나게 된다.

IIE 라디 연구원의 보수적인 평가에 따르면 위안화는 약 15% 정도 저평가돼 있다. 만일 위안화가 그 정도만큼 실제로 평가절상될 경우 현재 중국에서 이뤄지는 투자의 상당 부분은 손실을 보게 된다고 라디는 지적한다.

달러 보유액을 그냥 지출해 버리면 안 될까? 일본은 80년대와 90년대 초 무역수지 흑자가 쌓일 때 그렇게 했다. 그리고 일본의 대기업과 재벌 총수들은 할리우드 영화사부터 인상파 화가의 걸작품까지 사들였다. 사실 중국의 경제전문가들도 그런 방안을 검토 중이다.

물론 일본에 비하면 지출 방식이 훨씬 덜 우아하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300억 달러를 들여 전략적인 석유 저장고를 건설한다든가, 수천 명의 인도주의적 일꾼들을 갖춘 중국판 평화봉사단을 결성하는 일 등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중국의 외환보유액 증가 속도를 의미 있는 수준으로 늦추기에 충분치 않다고 경제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스탠더드 차터드 은행 상하이 지점의 수석 경제전문가 스티븐 그린은 “이런 방안들의 문제는 그런 일에 실제로 많은 돈을 지출하기 어렵다는 점”이라면서 “중국인들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은 해외 투자로 무역흑자의 일부분이나마 줄이려고 노력한다. 이런 면에서 중국 정부가 모델로 삼는 나라는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국내총생산(GDP)의 10%가 넘는 막대한 무역흑자를 해외의 항만과 텔레콤 사업에 투자한다고 스탠더드 차터드 은행의 콴 연구원은 소개했다.

"싱가포르 방식은 미 재무부 채권을 너무 많이 보유하지 않고 마이크로소프트(MS)사나 인도네시아 은행들의 주식을 매입하는 방법이다.” 현재 중국 정부는 자국의 각종 보험회사와 연금기금이 외국 채권과 주식에 총 83억 달러를 투자하도록 촉구한다. 그리고 다른 회사들에도 아프리카 같은 지역에서 전략적인 원자재, 특히 원유를 매입하도록 독려한다.

여기서 문제는 아주 작은 나라인 싱가포르와 달리 신흥 강대국인 중국은 세계적인 경제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은 채 날아다니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거대 석유회사인 중국해양석유(CNOOC)가 지난해 미 석유회사 유노칼을 인수하려 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보라. 미 의회의 강력한 반대로 유노칼 인수는 무산됐다. 중국의 외국 기업 인수는 오늘날의 막대한 무역 불균형을 해결하는 방안이 되지만 인수에 반대하는 이런 움직임은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중국은 외환보유액의 상당 부분을 계속 미 재무부 채권에 묻어둔다. 채권자들은 그 채권을 통해 미국의 막대한 공공부채의 대부분을 떠안는 셈이다. 현재 중국은 미 재무부 채권을 약 3330억 달러어치나 보유하고 있다. 일본의 6400억 달러어치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다. 중국은 이런 식으로 미국인들의 소비생활에 연료를 공급한다. 중국의 장기적 성장을 가능케 하는 국내 소비자 시장의 출현을 촉진하지는 못한 셈이다.

이런 모순의 뿌리는 80년대 초, 그리고 중국의 개혁이 시작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제조업 부문을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개방했다. 그러나 금융 부문은 개방하지 않았다. 이런 조치의 장점은 폐쇄적인 금융체계가 세계적인 투기자본의 공격으로부터 중국을 지켜냈다는 점이다. 97~98년 국제 투기자본은 아시아 전역의 은행들을 도산시켰다. 그러나 단점도 있었다.

중국 은행들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올바른 위험 관리 기법을 배우거나 현대적인 소매금융 혹은 소비자 대출 제도를 도입하려는 동기를 갖지 못하게 됐다. 이제는 금융체계가 너무 엉망이라 중국은 이를 개방하길 꺼린다. 중국의 금융체계는 놀고 있는 막대한 달러 더미를 깔고 앉은 셈이다. 은행들조차 그런 유휴자금을 국내에서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은 근본적인 문제를 낳는다. 누가 1조 달러의 부자가 되고 싶을까? 물론 중국이다. 그러나 그 재산이 주는 부담감도 갈수록 더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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