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音波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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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00년 3월 북미 남쪽의 섬나라 바하마. 깊은 바다 속에 있어야 할 고래 18마리가 해변에 '상륙'한다. 이중 일곱마리는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카나리아 제도(諸島)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고래 열마리가 해변에 몰려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이들은 왜 해괴한 집단행동을 보인 걸까.

과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해군이 인근에서 수중음파탐지기인 소나(SONAR:sound navigation and ranging)를 시험 가동한 때문이다. 탐지기에서 나온 초음파가 고래에게 강한 충격을 줘 집단 착란을 보인 것이다."

초음파(超音波), 사람의 귀로는 느낄 수 없는 주파수 2만㎐ 이상의 소리다. 파장이 짧아 장애물에 맞고 바로 되돌아오거나 강한 진동을 일으키는 성질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프랑스의 한 물리학자가 잠수함을 찾아내는 데 써본 이후 초음파 기술은 날로 발전해 왔다.

뱃살을 제거하는 성형법 가운데 초음파 지방흡입술이라는 게 있다. 초음파봉을 지방 부위에 넣어 강한 진동을 일으켜 지방세포를 녹인 뒤 이를 빼내는 시술법이다. 초음파는 농산물에 묻어있는 농약이나 배관 내 찌든 때를 없애는 데도 활용된다.

음파 충격을 가장 잘 이용하는 곳은 군대다. 음파를 쏘고 그 반사음으로 표적의 존재.방향.거리를 재는 '액티브(active) 소나'가 대표적이다. 이 장비를 함정.헬리콥터에 달고 다니며 적의 잠수함.화포 위치를 찾아낸다.

최근에는 1백마일 떨어진 곳의 수중 물체를 탐지하는 신형 장비까지 개발됐다. 문제는 이 장비에서 나오는 초음파가 워낙 강해 해양동물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청력을 마비시키고 혈액 순환에 이상을 일으킨다고 한다.

며칠 전 미 해군은 신형 소나의 사용을 지역에 따라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국제 환경보호론자들의 지적을 받아들인 결정이다. 하지만 사용 제한구역에 한국 등 일부 아시아 지역이 포함되지 않자 이번에 국내 환경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언젠가는 고래가 아니라 인간의 목숨을 노리는 음파충격 무기가 나와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을지 모를 일이다. 하기야 우리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정치인들의 쇼킹 발언에 매일 음파충격을 받아 단련되고 단련된 2003년 10월의 한국 사회 아닌가.

이규연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