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잃어버린 독립 혼|상해임정 청사|허름한 민가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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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로 가장 오래 사용됐던 건물이 변형,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상해시 마당노306농4호의 후미진 골목의 아주 낡은 이 3층 짜리 목조건물은 지난 26년부터 32년까지 약6년간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로 사용됐으나 지금은 너무도 허름한 민가로 변모해 당시 일제치하에서 민족혼을 불태우던 독립투사들의 기개와 흔적을 찾아볼 길이 없다.
한 층이 8평 남짓한 이 건물에는 당시 임시정부 요인들과 친분이 있었던 중국인 후손 친척 3가구가 층별로 살고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임시정부사무실로 사용했던 1층은 시멘트바닥을 마룻바닥으로 바꾸는 등 원 모습을 변형시켜 놓았다.
1945년 생으로 바로 이 자리에서 태어나 줄곧 1층에서 살고 있는 주산지씨(주선기·46)는 『한중관계가 호전되기 시작한 2, 3년 전부터 한국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아 작년 한햇 동안에 만 줄잡아 1천여명이 이곳을 다녀갔다』고 말한다.
주씨 가족들이 한국인 방문객을 위해 비치해둔 방명록에는 이 임정청사를 방문했던 한국인들의 서명과 짤막한 소감들이 적혀있다. 소감의 대부분은『너무나 초라한데 크게 실망했다』『원형보전을 위해 시급한 대책이 절실하다』는 내용들로 되어 있다.
방명록에는 대학생 연수단의 이름이 가장 많고 그 중에는 정부관리 등의 직책과 이름들도 더러 눈에 띈다.
1925년에 지은 이 건물의 임자는 중국정부. 주씨 가족은 이곳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성의를 표시한」성금을 모아 나름대로는 정성껏 내부를 고치거나 치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물의 원형 보전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퇴색시키는 결과를 빚고있다.
그럼에도 주씨의 부인 왕메이펀씨(왕미분·43)는 자신들이 살고있는 1층 바닥을 시멘트에서 마루로 개조하는데「큰 돈」이 들었다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다.
주씨 일가가 이 임정 건물에 살게된 동기는 당시 프랑스 조계인 이 지역에서 변호사업을 하던 이모부 구서우시씨(고수희·사망)가 임시정부 요인들과 내왕이 잦은데다 주씨의 이모 류룽성씨(유룡생·사망)가 김 철 선생 부인 등과 각별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
임정요인들은 지난 32년4월 상해 홍구 공원에서 있은 윤봉길의사 의거 후 급히 항주로 피신하면서 유씨에게 이 집을 넘겼으며 이를 계기로 유씨의 여동생이자 주씨의 모친인 류웨성씨(유열생) 부부가 살게 됐다.
주씨 부부는 지난해 92세로 사망한 유열생씨가 살아있을 때 김 구·이시영·김 철 선생 등 당시 임정요인들의 활약상과 이 임정청사에 대한 얘기를 들어왔으나 이를 발설할 경우 혹시 있을지 모르는 후환이 두려워 그 동안 자신의 거처가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였다는 사실을 숨기고 지냈다고 했다.
그러다 한중관계가 트이기 시작한 2, 3년 전부터 미국·일본국적의 한국인들이 찾아오면서 이 사실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들은 이 건물이나 당시 임정요인들에 대한 유열생씨의 짤막한 고사를 주워들은 수준에 불과해 당시 상황과는 동떨어진 얘기도 많다.
한편 이 건물주변의 나이든 주민들은 물론 이 지역을 관할하는 동사무소 격인 숭산가도서성거민위원회의 상당수 관계자들은 김 구 선생 등 임정요인들이 요즘 임정청사로 믿고 한국인들이 찾는 마당노306농4호에도 살았지만 그보다는 같은 골목 어귀에 있는 1호에 오래 살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당시 임정요인들이 일경의 눈을 피해 이 프랑스 조계에서 은거생활을 해야했던 특수성이나 윤봉길의사 의거 후 황급히 피해야했던 상황 등도 감안해야겠지만 임정요인 피신 직후부터 이 집에 살았던 유열생씨 마저 사망해버려 사실확인을 더욱 어렵게 하고있다.
상해임시정부는 당시 삼엄했던 일경들의 감시의 눈을 피해 여러 차례 자리를 옮겨다녔기 때문에 상해에서 만도 이 같은「역사적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문화부까지 독립부저로 출범한 점등을 감안할 때 비록 외국에 있기는 하나「우리 역사의 현장」을 되찾는데 정부가 힘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현재 한중간에 외교관계가 없긴 하지만 최근의 양국관계로 미루어 학술목적의 조사나 특히 임정청사 복원 합작 작업등은 무난하리라 보기 때문이다.
팻말이나 기념비 하나 없이 사멸되다시피 한 윤봉길의사의 거사현장인 홍구공원, 독립투사들의 묘소인 만국공묘 등의 유적지에 대한 정부차원의 대책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해=박병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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