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외대 노조 학습 방해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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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대 총학이 교직원 파업에 반대하며 인문과학관 건물에 붙인 플래카드. '무노동·무임금'을 촉구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2일로 파업 150일째를 맞고 있는 한국외국어대 교직원 노조에 대해 "시설 무단점거나 학습방해 등 지나친 쟁의행위를 금지한다"는 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서울북부지법 민사10부(김윤기 부장판사)는 1일 외대 법인이 노조를 상대로 낸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신청을 일부 받아들여 "쟁의행위는 폭력이나 파괴 행위를 수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법원은 ▶총장실 등을 무단 출입하거나 ▶교직원에게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거나 ▶근무 시간에 80㏈ 이상의 소음을 일으켜 학업을 방해하는 행위 등을 금지했다.

◆ 행정 업무 곳곳 마비=이날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 있는 외대 서울캠퍼스는 확성기 소리없이 모처럼 조용했다. 신본관 3층 이사장실 앞 복도에 붙여 놓았던 '총장 퇴진' 등의 거친 구호들은 노조 측이 신문지를 덧붙여 모두 가렸다. 노조의 김은주 선전홍보국장은 "법원의 가처분 결정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구호들은 가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체 직원 340명 중 223명이나 참여하고 있는 장기 파업 탓에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대외협력과나 연구지원과 등 사무실 곳곳의 컴퓨터들은 비닐에 싸여 있으며, 화장실은 청소가 되지 않아 쓰레기로 넘쳤다. 도서관은 직원 대신 학생 자원봉사 20여 명이 나서 대출.반납 업무를 하고 있었다. 영어과 2학년인 한 여학생은 "어학연수에 대해 물어보려 본부에 갔지만 직원이 없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 왜 이렇게 오래가나=파업은 당초 학교가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한 것이 발단이 됐다. 단체협약에 따르면 인사.징계위원회 9명 중 노조가 4명을 차지해 노조가 거부하면 위원회가 열릴 수 없다. 학교 측은 올 3월 "인사권과 징계권을 돌려받겠다"며 단체협약을 해지했고, 이에 노조는 전면 파업으로 맞섰다. 이후 보직 교수들과 노조원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등 물리적 충돌까지 빚으면서 갈등은 증폭됐다. 현재 학교와 노조는 폭행.업무방해.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각각 네 차례씩 서로 경찰에 고소를 한 상태다.

양쪽 모두 한치의 양보도 없어 교섭도 중단된 상태다. 노조 측은 "이사장이 직접 교섭에 응하라"고 나서고, 학교 측은 "학교의 경영권을 이슈로 하는 불법 파업"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과 관련, 학교 측은 원칙을 고수한다는 입장인 반면 노조는 "사무직의 특성상 복귀하면 밀린 일을 모두 한다"며 파업 기간 중의 월급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외대 총학생회의 옹일환(29.영어과 4) 부회장은 "파업이 다섯 달 동안 진행되면서 협상 쟁점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부당징계.폭행.성희롱 등으로 구호가 바뀌며 감정싸움으로 번졌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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