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원맨쇼'된 KBS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2% 아쉬운 인터뷰였다. KBS의 노무현 대통령 인터뷰 얘기다. 노무현대통령은 31일 저녁 방영된 KBS와의 특별회견에서 특유의 어조로 '바다이야기' 파문과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 등 각종 쟁점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입장을 피력했다.

기자로서 TV화면을 지켜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인터뷰가 너무 평면적이었다는 것이다. 매일 KBS 9시 뉴스에서 보는 남녀 앵커는 준비한 질문을 물어보고 노대통령은 준비한 멘트를 공중파를 통해 맘껏 날렸다. 만일 내가 인터뷰를 한 KBS 앵커의 데스크였다만 "야, 무슨 인터뷰를 이렇게 재미없고 맥빠지게 하냐"라고 질책을 했을 것같다.

인터뷰의 성패는 '불꽃'에 달렸다. 기자는 취재원에 날가로운 질문을 던지고 취재원은 질문에 멋지게 대응하거나 반론을 펴 불꽃이 튀어야 한다. 그래야 예기치 못한 새로운 대답과 반응과 정보를 이끌어내고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와 독자의 입에서 '아하'라는 소리와 함께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줘야 성공한 인터뷰다. 쉬운 예로 손석희 전 MBC 앵커의 인터뷰를 성공작으로 꼽을 수있다. 나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MBC 라디오를 들을 때가 많았는데 손석희 인터뷰를 들으면서 '참 잘한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좀더 구체적으로 성공적인 인터뷰를 하려면 추가질문(팔로-업 FOLLOW -UP)' 질문이 있어야 한다. 추가질문이란 말그대로 취재원이 1차 답변이 있은후 그 내용에 대해 추가적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이 질문이 얼마나 핵심을 찌르고 순발력있게 나오냐에 따라 인터뷰에 불꽃이 튀기도 하고 하나마나한 인터뷰가 되기도 한다.

추가 질문을 잘 하려면 몇가지가 전제되야 한다. 우선 인터뷰의 주도권을 기자와 동등하게 가져야한다. 양측이 동등한 파워를 가져야만 힘겨루기가 되고 불꽃이 튀는 법이다. 또 해당 질문에 평소 내공을 쌓아놔야 한다. 그래야만 추가 질문이 즉각적으로 나오게 된다.

그런데 KBS는 그렇지 못했다. 그저 일선 기자들이 써준 10가지 질문이 있으니까 이걸 대통령에게 묻고 그 대답을 듣고가겠다. 그런 수준이었다. 기자와 취재원과의 주도권도 형편없었다. 5:5는 고사직하고 기자는 1, 대통령은 9였다. 힘의 불균형. 좋은 인터뷰가 될 리가 없다. 추가 질문은 거의 없었다. 이 건 인터뷰가 아니라 노대통령의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청와대의'홍보,선전의 장'이었다.혹시 대학교의 언론학과 학생이나 기자들이 이 인터뷰를 배울까 걱정된다.

추가질문은 더더욱 그랬다. 설사 기자들이 질문을 써줬더라도 본인이 별도의 추가 질문을 준비하고 노대통령을 만나러 갔어야만 했다. 그러나 KBS의 이 잘생긴 두명의 앵커들은 아무런 추가질문 대책없이 대통령을 만나러 갔다. 공영방송은 원래 이런 것인가?

참고로 이날 KBS의 두 앵커가 던졌으면 좋았을 추가 질문을 몇가지 예시해 보겠다.

○(노대통령)"국민들한테 너무 큰 걱정을 끼쳐드린 데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검찰 수사가 끝나는 대로 책임 소재 규명과 대책을 국민들께 다시 말씀드리겠다."

▶추가질문:"대통령 조카 분은 이 사건에 어느 정도 연루됐는지요. 또 시중에 대통령이 빈부 양극화를 걱정하다가 '바다 이야기'도박장을 대거 설치, 모두를 가난하게 만들어 양극화를 해소하려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습니다.사실인지요."

○(노대통령)지난번 외환 위기 때 경제가 심각한 파탄에 빠졌을 때 '이대로가자!'하고 건배한 사람들도 있다는 거 아닙니까? 그 사람들은 서민이 아니거든요.2010년경까지는 그야말로 1분위부터 4분위까지의 주택 문제는 완전히 임대 주택으로..

▶추가질문: 대통령께서는 평소 사회통합 문제를 즐겨 말씀하시는데 이렇게 국민을 10개 계층으로 나눠서 1분위-4분위는 서민이라 손해볼 것없고.. 8분위위는 손해다..이런식의 인식과 언급은 국민을 분열시키는 발언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노대통령)"전작권의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한나라당이 반대한다는 것이다.'노무현 대통령을 흔들고 보자',이거 아닌가?"

▶추가질문: 대통령이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닙니까. 국방장관을 역임한 열린우리당의 천용택 전 장관도 '미국 증원군 전력은 1300조원어치'라며 작통권, 주권논리로 확대할 필요 없다' 고 하던데요. 대통령이 전직 국방장관 30명도 제대로 설득못하면서 어떻게 그 책임을 모두 한나라 당에 전가하는 것은 궤변 아닙니까.

○(노 대통령) "한미동맹에 아무 문제가 없다"며 "주한미군의 지원도 아무 문제 없고, 조금도 줄어들지 않을 것"

▶추가질문: 노무현정부에서 초대 미국대사를 지낸 한승주 장관도 한미관계가 C학점 수준이라고 하던데요.

○(노대통령) 중국이 미국하고 FTA를 먼저 교섭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저희는 다 아래위로 경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고급품에서 또는 약간 저급품에서 경쟁을 하고 있는데, 노무현이 뭐 하냐고 아마 엄청난 비난이 빗발칠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한 발 앞서가야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지, 뒤따라가면 안 되는 것이거든요.

▶추가질문: 청와대에서 노대통령의 경제 비서관을 역임한 정태인씨가 가장 앞장서서 큰 목소리로한미FTA를 반대하고 있던데요. 왜 그렇습니까.

○ 대통령 : 후회는 없습니다. 후회는 없고요, 대통령은 후회하면 안 된대요. 그래서 후회는 안 하기로 하고…….

▶추가질문: 국민적 웃음거리가 된 대연정 제안도 후회를 안하시는지요. 후회할 것이 하나도 없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인 것은 납득하기 어려습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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