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특별회견 "코드 인사는 책임정치의 당연한 원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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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31일 KBS와의 특별회견에서 한·미 FTA,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 국정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청와대 제공]

"국민한테 걱정을 끼쳐 드려 송구스럽다. 위로 수준의 사과라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정책적 책임이라든지 오류에 대한 책임으로서의 사과를 하는 것은 좀 더 신중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제도의 허점과 산업 정책, 규제 완화 정책, 그리고 도박 단속의 부실, 이 모두가 뒤엉켜서 아주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했다. 특별팀을 만들어 전체를 분석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완벽하게 세우려 한다. 책임소재를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해 국민께 다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다. 그 과정에서 어디에서 얼마만큼 부정이 있었느냐, 또는 게이트가 있었느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지금 말씀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검찰 수사가 끝나는 대로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다. 비싼 수업료를 낸다고 생각하고 인내해 주시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대책을 세우겠다."

경제 실패 "지표 좋은데 민생 못 풀어 송구"

"부동산 정책은 반드시 성공한다. 앞으로는 부동산 투기 단속에서 서민주택 공급 정책으로 확실하게 방향이 가고 있다. 부동산 투기하는 사람들이나 부동산 신문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일부 신문이 부동산 정책을 흔드는데, 국가 정책을 그렇게 흔들면 효과 내기가 어렵다. 부동산의 거품 꺼질 때 금융 시스템이 붕괴되고 경제에 급격하게 위기가 오거나 침체한다. 경제 침체 때 누가 제일 손해를 보느냐 하면 역시 서민이다. 외환위기 때도 "이대로!" 하고 건배한 사람들도 있다는 거 아니냐. 그 사람들은 서민은 아니다. 소득을 열 등급으로 나누면 아래로부터 네 등급까지의 사람들에게는 국가가(2010년께까지는) 임대주택을 120만 채까지 공급할 것이다. 5분위부터 7, 8분위에 있는 분들을 위해서는 부동산 가격을 잡아 줘야 한다. 그 위에 있는 쪽은 투기만 못하게 관리하겠다. 민생 문제를 시원하게 풀지 못해 안타깝고 송구스럽다. 국정 실패라는 말엔 동의하지 않는다. 물가, 수출, 외환보유액이라든지 성장률이 아주 좋거나 정상으로 가고 있다. 경제가 좋아도 민생이 어려울 수 있다. 양극화 현상은 일반적 현상이다. 핵심은 비정규직이고, 다음이 영세 자영업자들이다. 근래에는 임금이 싸기 때문에 돈을 적게 주고 다른 부담 없이 쓸 수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채용하는데, 이걸 막아주자면 비정규직 차별금지법을 통과시켜 줘야 된다. 지금 이게 몇 년째(국회에) 묶여 있어 정부로서는 준비를 다 해 놓고도 비정규직 차별 금지를 할 수가 없다."

전시작전권 "한나라당 반대가 가장 큰 문제"

"핵심적인 문제는 한나라당이 반대하는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이 한나라당 정부 대통령 아니냐. 노태우 정부가 세운 계획에 따라서 하고, 김영삼 대통령 정부가 평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하면서 '2000년께까지 전시 작전통제권까지 환수할 것'이라고 계획을 세웠다. 지금 반대하고 있는 일부 신문도 그때 다 잘했다고 칭송하고, 앞으로 전시 작전통제권도 이른 시일에 환수해야 한다고 말해 놓고 지금 와서 왜 뒤집나.

한.미 동맹에 아무 문제 없다. 국방비가 621조원이라고 말하는 신문도 있는데, 터무니없는 얘기다. 전작권 환수 안 하더라도 그건 다 들어가게 돼 있다. 국방 개혁함으로써 좀 줄어서 2020년까지 621조원이 들어가는 것이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은 이것(전작권 환수)과 전혀 관계없다. 아무 상관없는 얘기들을 얽어 가지고 여하튼 '노무현 대통령 흔들고 보자' 이거 아니냐. 이렇게 하면 안 된다."

한·미 FTA "중·일이 먼저 해도 나를 욕할 것"

"이런 중대한 정책에 대해 대통령의 선의는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치적 목적으로 하는 것처럼 오해하는 분들에게 무척 섭섭한 마음이 든다. 미국은 세계 제일의 시장이다. 거기에서 한국이 승부를 걸어야 한다. 만일 개방하지 않고 어물어물하다가 고립되면 그때는 어떻게 되겠는가. 지난번 (FTA를 체결한) 칠레만 해도 자동차.휴대전화.전자제품 시장 점유율이 뚝뚝 떨어졌으나 (FTA) 발효하고 나서부터 다 회복되고 30% 이상씩 성장해 가고 있다. 걱정했던 농산물은 걱정의 반도 실현되지 않았고, 기대는 기대 이상으로 실현되고 있다. 멕시코에서 한국 타이어를 팔다가 일본이 멕시코하고 FTA 해버리니까 한국 타이어는 지금 굉장히 고전하고 있다. 일본.중국이 먼저 미국과 FTA 교섭을 한다고 생각해 보라. 아마 '노무현이 뭐 하느냐'고 엄청난 비난이 빗발칠 것이다. 그리고 (정부) 협상력을 말하는데 대한민국 공무원을 너무 무시하지 말아 달라.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임기 말 소회 "후회 없지만 일 너무 벌인 것 같아"

"대통령과 좀 가까운 사람들을 계속 문제 삼는데 능력 없는 사람은 쓰지 않는다. 능력이 똑같다면 대통령의 정책을 잘 이해하고 착실하게 이행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을 써야 한다. 국정에 대한 최종 책임을 대통령이 지지 않느냐. 코드 인사라는 이름이 좀 마땅치 않지만, 그것은 책임 정치의 당연한 원칙이다. 어느 조직에나 바깥 사람이 오게 돼 있고, 정부 각 부처는 항상 낙하산이 내려오지 않느냐. 장관이 항상 바깥에서 오니까…. 대통령도 낙하산이다. 모든 조직에서는 바깥 사람과 내부 승진을 적절하게 조합해서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인사 원칙이라는 게 이미 행정학 이론에 나와 있다. 그런 열린 인사를 가지고 낙하산 인사라면 안 되는 것이고…. 공기업이라든지 이런 쪽에 순수 전문가가 대통령의 개혁 정책을 다 수용하겠느냐. 이 인사는 과거에도 있었고,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계속 잘못된 것으로 얘기해 가면 국가 운영이 매우 어렵다."

"(지난 3년 반을 돌이켜 보면) 후회는 없다. 힘들었다. 일을 너무 많이 벌인 것 같다. 내가 크게 한번 흔들렸던 것이 부안 방폐장 문제였지 않느냐. 그게 18년간 미뤄오던 것인데 어떻든 해결했다. 새로 벌인 것이라면 행정복합도시 건설, 용산기지 이전, 작전통제권 환수 공공기관 지방이전 등이다. 이거 하나하나마다 전부 저항에 부딪혀서 가다가 밀려서 또 넘어졌다가…. 그런데 사실은 내가 자다가 생각이 나서 벌떡 일어난 것이 아니고, 수십 년 전부터 국가적 과제로 계속 거론되던 것들이다. (행정수도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하려다 그만둔 것이다. 용산 기지, 노태우 대통령이 다 벌여 놓고 돈 없다고 안 했던 건데 지금 하는 것이다. 지금 마무리해 가는데, 참 그렇게 힘이 든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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