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in] 봉준호 감독 "독과점을 규제하든 예술 영화 지원하든 실질적 대책 나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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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세번째 영화'괴물'로 흥행신기록 갱신을 눈앞에 둔 봉준호 감독(37)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괴물'의 제작과정은 그만큼 힘들었다. 봉감독 역시 처음부터 흥행에 능한 감독은 아니었다. 연세대 사회학과.영화아카데미를 나와 충무로 연출부 생활을 거친 봉 감독은 단편시절 '지리멸렬' 등의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정작 장편 데뷔작 '플란더스의 개'(2000년)는 참담한 흥행실패였다. 서울 관객 수가 5만여명. 흥행기세가 크게 꺾인 요즘과 비교해도 '괴물'의 하루 관객에 못미치는 숫자다. 하지만 감독의 재능을 알아본 제작사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는 당시 이미'괴물'의 제작에 의기투합했다.

봉 감독은 30일 연세대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런 전력을 "축복 속에 시작한 영화가 없었다"면서 "영화마다 주위의 우려가 오히려 자극과 도움이 됐다"고 돌이켰다. '플란더스의 개'는 그런 사소한 얘기가 장편영화가 되겠느냐는 지적을 숱하게 들었다.'살인의 추억'은 어두운 얘기인 데다 범인이 끝내 잡히지 않는 결말이 주위의 걱정을 불렀다. 그럼에도 '살인의 추억'은 5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 만듦새 역시 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충무로에 전례없는 프로젝트인 '괴물'은 더욱 우려가 컸다.

무엇보다도 디지털 기술로 괴물을 만드는 일이 현실적으로 최대 난제였다. 초기 시나리오에서 괴물의 등장 장면은 180컷. 컷당 1억원을 받는 해외 유명회사에 컴퓨터그래픽을 맡기면 이 비용만 180억원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팔꿈치가 빠질 때까지 빨래를 짜고 또 짜는 심정으로" 괴물 등장을 최종 120컷으로 줄였고, 미국의 신진회사 오퍼니지에 50억원대에 맡겼다. 괴물의 완성도는 합격점을 너끈히 넘어섰지만, 막판에 불에 타는 장면은 '허접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가장 손이 많이 가는 클라이맥스인데, 배우들의 감정선을 고려해 시나리오 흐름대로 촬영하다보니 정작 미국 쪽에 충분한 작업 시간을 주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제작비 상승 부담 때문에 기술진을 추가로 투입하지도 못했다. 봉 감독은 "예산은 이제까지 만든 영화 중 가장 크지만, 예산을 아껴야 한다는 압박 역시 제일 컸다"고 했다.

이렇게 완성된 '괴물'은 기록적인 속도로 흥행사를 새로 쓴 동시에 또 다른 논쟁을 촉발시켰다. 봉 감독은 "그동안 영화계에서 고민해 온 내용이 이번에 공론화됐다"면서 "이를 계기로 독과점 규제든, 독립.예술영화 지원책이든 제도적 성과를 확실히 거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관객의 식성이 다양화되는 것이 멀리 보면 극장 측에도 좋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제까지 그래왔듯, 그는 이미 신작 준비에 돌입했다. 엄마와 아들의 얘기인 '마더'(가제)와 프랑스 만화가 원작인 '설국열차'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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