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 입양 부부의 「즐거운 집」(마음의 문을 열자:22)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기른 정도 낳은 정 못잖아요”/“아이 낳기 어렵다”에 절망하다 결심/해외 입양에 부끄러움 느껴/외딸 외로울까 「동생」 데려오기로
『해린이는 엄마랑 아빠중에 누가 더 좋지?』
『음… 아빠.』
『그래? 그럼 엄마는 해린이 맛있는 것 안 만들어,준다.』
『아니 아니. 엄마랑 아빠랑 똑같이 좋아. 많이 좋아.』
까르륵 웃음을 터뜨리며 엄마가슴을 파고드는 세살된 딸을 바라보는 부부의 눈에는 사랑이 가득하다.
서울 성북구 전경식(36ㆍ설계기사)ㆍ한미숙(32)씨 부부의 하루중 가장 즐거운 시간. 재롱둥이 해린양(3)은 생후2개월때 이들이 입양해온 딸이다.
전씨부부는 같은 교회를 다니며 자연스럽게 만나 83년 온 세상의 축복속에 결혼했다.
금실좋던 가정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결혼 2년만이던 85년. 아기를 기다리다 부부가 함께 병원을 찾아갔다. 진단결과는 전씨가 희소정자증으로 임신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병원문을 나서는 순간 하늘이 노랗고 현기증으로 쓰러질 것 같더군요. 집에 와서 서로 부둥켜 안고 밤새 울었습니다.』
부인 한씨가 지성으로 아기를 갖고싶어 했기에 남편 전씨의 가슴은 더욱 찢어질듯했다.
『혹시 하는 기대와 역시 하는 절망이 반복되는 고통스런 세월이었어요. 그렇게도 좋던 부부사이에 말다툼이 잦아지고….』
실의에 빠져있던 87년1월 전씨부부는 우연찮게 입양을 결심하게 됐다. 같은 교회의 외국인 신도들이 한국고아들을 입양시켜 구김살 없이 키우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었던 것.
입양기관 상담을 통해 해마다 1만5천명의 미혼모 아기가 태어나 버려진다는 사실과 그중 3천여명만이 국내외로 입양되고 나머지는 고아가 된다는 말을 듣고는 부부가 큰충격을 받았다.
그나마 해외입양이 많고 외국인들만이 자녀가 있어도 피부색과 인종이 다른 우리나라 고아들을 입양해 간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소아마비 등 장애자들만 골라 입양해 정상인으로 키우는 유럽의 입양단체가 있다는 말은 감동적이었다.
양부모와 혈액형이 같아야함은 물론이고 얼굴이 잘 생기고 머리가 좋은 아이만 몰래 골라 찾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까다로운 입양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
상담기간이 끝나고 입양기관에서 비밀입양을 하겠느냐고 물었을때 전씨부부는 단호히 공개입양을 택했다. 상담원이 처음 본다는듯 오히려 놀라는 표정이었다.
전씨부부는 임신한 것처럼 세상눈을 속이지 말고 입양이 결코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앞장서서 보여주자고 굳게 약속했다.
『이름을 지어줄때의 기쁨이라니…. 해린이가 오면서 집안에 온기가 돌게 됐죠.』
외아들인 전씨지만 키우는 잔재미가 훨씬 크다는 딸을 택했다. 물론 혈액형도 상관하지 않았다. 당초의 목적은 입양사실을 숨기고 대를 잇게하는데 있었지만 입양상담과정에서 「깨달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해린이가 이해할수 있는 나이가 되면 입양사실을 알려줄 생각입니다. 혹시 생모를 찾으면 힘껏 도와주고 모녀간의 만남도 말리지 않겠어요.』
이들에게 단한가지 걱정이 있다면 이웃아이들이 「주워온 애」라고 해린이를 놀려 마음을 상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새로운 입양문화가 생겨나야 합니다. 부끄러운 것은 입양자체가 아니고 버려지는 아이가 많은 것과 같은 핏줄들이 이들을 꺼려 다른 나라로 내보낸다는 사실이지요.』
전씨부부는 수술을 받으면 30%정도는 임신가능성이 있지만 자신들의 아이가 생겨도 또한명을 입양시키기로 합의했다.
해린이가 자라면서 외로워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외곬스런 성격이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해린이를 정성과 사랑으로 키우렵니다. 해린이가 구김살없이 떳떳하게 자라나는 것에 우리 부부는 이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찾을 겁니다.』
부인 한씨는 어느틈에 품속에서 안겨 잠든 해린이의 볼에 자신의 볼을 비벼주고 있었다.<김종혁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