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세요? '한국서 통해야 세계로'…자동차도 테스트 시장 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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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이 나오면 남보다 하루라도 빨리 써 보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선도적 소비자'. 흔히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라고 하는 이들이 노트북.휴대전화 같은 디지털 미디어 제품에서만 극성을 부리는 건 아니다. 신차가 나오면 앞다퉈 타 보고 까다로운 주문을 늘어 놓는 고객들로 한국이 세계 자동차 업계의 테스트 마켓으로 떠올랐다.

일본 닛산의 스포츠 세단인 인피니티 G35는 10월 17일 세계 첫 신차 발표회를 한국에서 한다. 스웨덴 볼보의 대형 세단인 뉴S80은 10월 9일 유럽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에서 신차를 내놓는다. 한국보다 수입차 시장이 수십 배 큰 미국.일본을 제치고 한국에서 신차를 처음 선보이는 건 한국 소비자들이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때문이다.

닛산코리아의 박준석 대리는 "소음이나 인테리어 마무리를 꼼꼼히 점검하는 한국 소비자의 안목을 본사에서 높이 평가해 한국의 반응을 본 뒤 미국.일본에 출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렉서스 중형차인 ES350도 5월 한국에서 첫 출시를 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 계열의 렉서스는 독도 등 문제로 반일 감정이 고조된 상황에서도 한국 진출 4년 만에 수입차 시장 1위에 올랐다. 또 2003년 옛 모델인 ES300을 국내 출시했을 때 '사이드 미러가 자동으로 접히지 않아 주차할 때 불편하다'는 우리나라 고객들의 불평을 본사가 반영해 신차 출시 때 아예 자동 사양을 기본 옵션에 넣었다.

BMW코리아가 지난달 출시한 최고급차 7시리즈에는 한글 내비게이션이 달려있다. 독일어.영어 다음으로 세 번째 언어다. 1억원 넘는 고급차를 타면서 내비게이션은 싼 것을 써서 불편하다는 한국 소비자의 입맛을 맞추려고 독일 본사에서 한글 버전을 직접 개발했다. BMW는 내년 한글 내비게이션을 모든 신차 모델에 적용한다.

프랑스 르노 본사는 한국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귀'에 예민하다. 르노삼성의 서규억 팀장은 "품질과 소음.진동에 가장 까다롭다는 일본 소비자들이 찾지 못한 '소음'을 한국 소비자들이 찾아내 품질 개선으로 이어진 적이 있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자동차가 2004년 하반기 출시한 SM7의 경우 연료 탱크에 기름을 가득 채웠을 때 출렁거리는 소리가 난다는 고객들의 불만이 나왔다. 이 차는 닛산의 중형차인 티아나를 한국 실정에 맞게 변경한 차로 일본에서는 이런 소비자 불만이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 본사 연구소에서 나와 대책을 강구했다. 지난해 9월 플라스틱 연료탱크 안에 소음 차단 역할을 하는 흡음재를 설치해 문제를 해결했다.

김태진 기자

◆ 얼리 어답터=신제품에 호기심이 많은 소비자를 일컫는다. 인터넷 시대를 맞아 제품 출시 정보를 손쉽게 얻고 제품 구입 이후 품질.성능 평가를 해당 사이트에 게재한다. 회사는 이들의 의견을 중시해 품질 개선에 반영하기도 한다. 그만큼 제조사와 소비자 사이의 중간자 역할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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