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 퇴출' 후폭풍… 교과서 고칠 때까지 학생들 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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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의 태양계 행성 단원. 앞으로 이 부분을 개정해야 된다.

과학 포털 '사이언스올(www.scienceall.com)'의 명왕성 부분. 이 부분도 손질해야 한다.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이 더 이상 아니라고 하는데 왜 그런 거지요."

25일 서울 상계동의 중학교 2학년인 김모군은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다니는 학원 선생님에게 물었다. 그러나 학원강사 역시 전공이 달라 선뜻 대답해줄 수 없었다. 국제천문연맹(IAU)이 24일 태양계 행성에서 명왕성을 퇴출시킨 데 따른 후폭풍의 한 단면이다.

상당수의 학생이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며, 새 학기를 맞은 과학 교사들도 태양계를 가르칠 때 그런 혼란을 없애기 위해 강의 노트를 다시 만들고 있다. 그런가 하면 과학 교과서도 전부 바꿔야 하게 됐다.

서울 하계중학교 황혜진 과학교사는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이라고 배워왔는데 어느 날부터 아니라고 하면 혼란스러워할 것"이라며 "앞으로 왜 명왕성이 행성에서 빠지게 됐는지를 자세하게 알려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학사에서 펴낸 중학교 2학년용 물상 교과서 74쪽에는 '지구와 별'이라는 단원이 나온다. 이 단원은 명왕성을 9개 태양계 행성 중 태양계의 가장 외곽에 있으며, 가장 작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설명은 초등학교 교과서, 각종 어린이 과학서적 등 곳곳에 등장한다.

한국천문연구원 김봉규 박사는 "태양계 행성의 정의가 바뀌고, 행성의 숫자까지 줄어들었기 때문에 기존 교과서를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계도 명왕성 파동이 일 전망이다. 도서출판 이코펍 김기태 대표는 "태양계 단원이 들어가 있는 어린이 과학서적의 경우 개정판을 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기존에 인쇄해 놓은 책을 그 상태로 서점에 내놓을 수 없게 될 판"이라고 말했다.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에서 빠진 마당에 어쩔 수 없이 기왕에 인쇄해놓은 책은 틀린 과학서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태양계를 다룬 어린이 과학서적은 한 해에도 수십 종이 발간되고 있을 정도다. 국립중앙과학관 등 공.사설 과학관의 태양계 전시물 역시 교체해야 한다. 태양계 행성 전시물의 경우 과학관에서 가장 눈에 띄게 배치되어 있다. 연간 수십만 명이 관람하는 과학관의 이런 전시물이 그대로 있을 경우 청소년들의 혼란이 더욱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명왕성 후폭풍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스미소니언연구소 항공우주박물관에서 '행성 탐험' 전시를 주관하고 있는 제임스 짐벨먼 학예관은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에서 빠지는 바람에 당장 전시물을 어떻게 재배치해야 할지 고민"이라며 "어린이들이 행성 이름을 쉽게 외울 수 있도록 한 '태양계 가족' 노래 가사도 역시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천문학자의 경우 명왕성 퇴출에 대한 불만도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명왕성 탐사선인 뉴호라이즌스호 계획 책임자인 미 항공우주국(NASA) 앨런 스턴 박사 등은 이번 IAU의 결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스턴 박사는 "이번 결정은 천문학계의 망신이다. 전 세계 1만여 명의 천문학자 가운데 이번 투표에 참여한 사람은 424명으로 5%도 안 된다"며 결정을 철회해 달라는 청원서 서명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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