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 때부터 자격 시비 … 76년 논쟁 매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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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에서 퇴출당한 것은 1930년 명왕성 발견 이후 70여 년간 끌어온 태양계 행성 지위 논란을 마무리한 천문학계의 일대 사건이다. 명왕성을 계속 태양계 행성으로 끌고 갈 경우 명왕성 발견 이후 새로 발견된 케레스.카론.제나(2003UB313) 등 새 천체는 물론 앞으로도 수없이 발견될 것으로 예상되는 천체들도 태양계 행성으로 넣어야 한다는 부담도 이번 결정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정은 미국과 유럽 천문학계가 명왕성을 놓고 벌인 힘겨루기에서 천문학적인 원칙을 고수한 유럽 학계의 승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발견 때부터 논란이 됐던 명왕성=태양계 행성은 30년 미국인 천문학자에 의해 발견되기 전까지는 수성.금성.지구.화성.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 등 8개였다. 문제는 명왕성이 발견되면서 태양계 아홉 번째 행성으로서 지위를 얻은 것이다. 물론 이번에 그 지위를 박탈한 국제천문연맹(IAU)에 의해서다. 그러나 명왕성은 연구 결과 기존 8개 행성과는 판이하게 다른 진화 과정을 거쳐왔다. 즉 행성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천문학계의 그동안 지적이었다. 기존 9개의 태양계 행성 중 태양에 가까운 수성.금성.지구.화성 등 네 개의 행성은 표면이 암석으로 이뤄진 '지구형'이며, 그 다음으로 먼 곳에 있는 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 등은 가스층으로 뒤덮인 '목성형' 행성이다. 이들 8개의 행성은 모두 태양 주위의 타원 궤도를 돌고 있다. 그러나 명왕성은 전혀 다르다. 다른 행성에 비해 지나치게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돌뿐더러 대부분 얼음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측 결과다. 이에 따라 명왕성은 태양에 가장 가까울 때의 거리는 44억㎞, 멀리 있을 때는 74억㎞나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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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수성~해왕성까지의 8개 행성은 중력이 각각 주변의 천체들은 집어삼키면서 진화했다. 그러나 명왕성은 껌이 계속 달라붙듯 점성에 의해 주변의 천체가 달라붙어 커진 경우다. 이런 천체는 크기도 한계가 있으며, 둥글지도 않다. 한국천문연구원 김봉규 박사는 "명왕성과 이번에 추가로 태양계 행성으로 입성할 뻔한 카론.제나.케레스 등은 앞선 8개의 행성과는 생성 기원과 그 특성이 여러 모로 달라 과학적으로 행성의 범주에 넣기 어렵다"고 말했다.

◆ 실패한 미국 천문학계의 '명왕성 구하기'=명왕성은 기존 9개 태양계 행성 중 미국인이 발견한 유일한 행성이었다. 발견자는 미국 로웰 천문대의 톰보였다. 나머지 행성은 모두 유럽 천문학자들이 발견했다. 명왕성에 대한 미국 천문학계의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에 미국 천문학계의 명왕성 구하기는 눈물겨웠다. 수성~해왕성의 8개 행성과 진화과정이 완전히 다른 명왕성을 살리기 위해 명왕성을 비롯한 새로 발견된 천체를 명왕성형 천체로 분류하려는 안을 내놓아 IAU 총회 시작 단계에서는 과학자들로부터 어느 정도 동의를 얻는 듯했다. IAU는 최근 태양계 행성이 12개로 늘어날지 모른다는 자료를 내기도 했었다. 한 천문학자는 "학문적인 원칙을 고수하려는 상당수의 유럽.미국 천문학자들이 들고 일어나 태양계 행성이 12개가 될 뻔한 '사태'를 막았다"고 말했다.

◆ 명왕성 살렸으면 행성 수없이 탄생=명왕성이 계속 태양계 행성으로 살아남았으면 당장 태양계 행성은 명왕성 이외에 3개가 추가돼 12개가 될 뻔했다. 문제는 12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IAU는 새로 발견된 또 다른 12개의 천체가 태양계 행성의 지위를 얻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뿐이 아니다. 명왕성이나 케레스.카론.제나 등이 발견된 곳에는 그들과 유사한 천체가 수없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천문학계의 공통된 연구 결과다. 그곳에는 태양계 형성 당시 태양이나 행성으로 뭉치지 못한 얼음 덩어리와 같은 소규모 천체들이 수없이 많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그곳은 '카이퍼벨트'다. 이번 총회에서는 행성 기준이 확실하게 정해졌다는 것도 큰 소득이다. 이에 따라 태양계 행성 진입 장벽이 아주 높아졌다. 수성~해왕성 등 8개 행성과 같은 진화 과정을 거쳐야만 행성 대열에 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 행성=항성의 주위를 돌면서 항성의 빛을 반사하는 천체. 혹성은 행성의 일본식 표현.

◆ 왜행성=소행성 중에서도 크기가 큰 천체. 카론.케레스.2003UB313.명왕성 등 4개가 인정되고 있음.

◆ 항성=태양처럼 핵융합 반응을 통해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

◆ 위성=행성의 주위를 도는 천체. 지구의 달과 같은 존재.

◆ 소행성=행성이라 불리기엔 너무 작은 암석. 형태도 구형이 아니라 여러 가지 모양.

◆ 혜성=태양 둘레를 타원 또는 포물선 궤도를 따라 도는 긴 꼬리를 가진 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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