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은 '미니 유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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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중국 수도 베이징(北京)이 '미니 유엔'으로 부상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앞다퉈 외교관을 추가 파견하는가 하면 대사관 건물을 속속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최근 중국 외교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여러 나라 대사관들이 줄지어 기존 건물 확장이나 신축을 신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를 "중국의 국력과 외교무대에서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각국이 중국에 파견한 대사관(영사관 포함) 수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나타났다. 캐나다.일본.한국 등 주요 국가의 대사관 규모도 워싱턴에 이어 둘째로 크다. 지난해 말 현재 베이징에는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168개국 가운데 156개국이 상주 대사관을 운영하고 있다. 또 국제기구 21곳의 사무소도 있다.

현재 대사관을 증축하거나 증축을 계획 중인 국가는 미국.한국.일본.프랑스.독일.이집트.네덜란드 등 10개를 넘는다. 미국 대사관의 경우 1979년 수교 당시 직원은 90명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현지 직원을 포함해 700명을 넘어섰다. 이렇게 직원이 늘어나는 바람에 사무실이 모두 11개 건물에 흩어져 있다. 미국은 2004년 2월부터 베이징 시내 외국공관이 밀집돼 있는 차오양(朝陽)구 샤오량마차오(小亮馬橋)에 새 대사관 공사를 시작했다. 2억7500만 달러를 들인 이 건물이 2008년 6월 완공되면 미국의 해외 공관 가운데서 최대가 된다.

올해 중국과 수교 50주년을 맞는 이집트 대사관은 지난해 9월부터 비자 발급 사무소 면적을 현재의 네 배로 늘리기 위한 공사를 진행 중이다. 당초 정치.경제.농업 등 3개 부처만 운영했던 네덜란드 대사관은 4년간에 걸쳐 증원을 거듭했다. 즉 경제처 아래 교통부와 과학기술부, 위생복리부와 체육부를 신설했고, 정치처 산하에는 문화부를 새로 만들었다. 올해 하반기에도 안전.군사.세관 업무를 담당할 부서를 증설한다. 이렇게 되면 현재 대사관으로는 수용 불가다. 내년에 새 대사관으로 입주하면 비로소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92년 수교 이후 한 차례 이사한 한국 대사관도 올 10월 새 대사관으로 옮긴다. 그러나 현재 대사관 건물도 팔지 않고 부속 건물로 활용할 계획이다.

프랑스 대사관 측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사관 관계자는 "80년 수교 당시 직원이 60명이었지만 지금은 200명이 넘는다"며 "인력을 더 늘리고 싶어도 사무실이 좁아 지금은 어렵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내년에 2만㎡ 규모의 새 대사관이 완공되면 인력을 300명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독일 대사관은 아직 신축 계획이 없다. 대신 대사관 내 외교관 아파트를 사무실로 개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대사관뿐만이 아니다. 각지의 영사관도 속속 늘고 있다. 당초 상하이(上海).광저우(廣州).우한(武漢).홍콩 등 4곳에만 영사관을 운영했던 프랑스는 지난해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도 영사관을 냈다. 그리고 홍콩을 제외한 기존 영사관은 더 넓은 곳으로 옮겼다.

?배경=각국이 주중 외교 역량을 경쟁적으로 강화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중국 연구 강화다. 프랑스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환구시보와 인터뷰에서 "최근 들어 본국에서 중국에 대한 분석요구가 부쩍 늘었으나 전담 인력이 적어 정보력과 분석력을 강화하기 위해 인력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둘째, 중국과의 교류 지원이다. 현재 주중 미국 대사관에는 매주 평균 3개의 대표단, 10여 명의 정부 관계자가 다녀간다. 독일 대사관도 최근 잦아진 자국 기업인들의 안내 때문에 부쩍 바빠졌다. 문화.체육.관광 인사의 교류가 크게 늘면서 영사 업무가 매년 크게 늘고 있다.

셋째, 자국의 이미지 홍보다. 이집트 대사관은 새로 영사부를 확장하면서 내부 장식을 피라미드를 주제로 꾸몄다. 이집트 문화를 홍보하는 영상관도 설치했다. 신축 중인 프랑스 대사관은 영화관.화랑.서점.프랑스언어관 등을 설치해 적극적으로 자국 문화를 알릴 예정이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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