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8000억 CD 편법 발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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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명의자와 자금주가 다른 무기명 양도성 예금증서(CD) 1조8000억원어치가 편법 발행돼 중소 건설사들의 분식회계 자료로 악용된 사실이 검찰에 적발됐다. 이 '제3자 명의 CD'의 발행에는 알선 브로커와 투자 수익을 위해 CD 자금을 융통해 준 증권사, 수신 실적을 올리려는 은행이 연루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20일 중소 건설사로부터 수수료를 받은 뒤 증권사 자금으로 거액의 CD가 발행되도록 알선해 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증권사 전 직원 이모(43)씨, 사채업자 최모(50)씨 등 브로커 5명을 구속기소하고, 나머지 브로커 56명은 불구속.약식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러한 CD 사본 등을 이용해 사실과 달리 자금력이 있는 것처럼 자산을 부풀려 회계 처리한 혐의(건설산업기본법 위반)로 199개 중소 건설업체(연매출 100억원 이하) 대표 및 법인을 약식기소했다. 또 CD 발행에 관여한 13개 은행, 102개 점포 담당자들과 일곱 곳의 증권사 직원들에 대해 징계 조치하도록 금융감독원에 통보했다.

◆건설.금융사 '윈-윈 전략'에 시장 왜곡=검찰에 따르면 '제3자 명의 CD'는 더 많은 수주를 받아 실적을 올리려는 건설사와 수수료를 챙기는 브로커, 수익을 올리려는 금융기관의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져 나온 산물이다.

건설사들은 이 같은 CD를 자본력을 부풀려 수주 실적을 높이는 데 사용했다. 건설협회는 매년 건설사들의 자본력 등을 따져 시공 능력을 평가하고 공사 입찰 한도를 정하기 때문이다.

브로커들은 건설사로부터 1000만~2억여원의 수수료를 챙겼다. 전단지와 '전화 마케팅'으로 건설사에 접근한 '모집 브로커'는 '중개 브로커'를 거쳐 전직 금융기관 직원이거나 다년간 금융기관과 유착해 온 '최종 브로커'에게 CD 발행 알선을 의뢰하고 수수료를 나눴다.

최종 브로커와 결탁한 증권사는 CD 발행대금의 일부를 건설사에 부담시키고 시중 발행가보다 낮은 인수가로 CD를 발행했다. 증권사 직원들은 CD를 다시 매수하고 시중가로 처분해 투자 수익을 올렸다. 은행 직원들은 거액의 CD 자금을 수신해 주면 실적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발행 대금 예치를 거부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이 같은 이해관계의 일치로 실제 발행된 CD는 2004년 12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1조8000억원을 훨씬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제3자 명의 CD'=계좌 명의자와 자금주가 상이한 CD(Certificate of Deposit, 무기명 양도성 예금증서). CD는 본래 은행에서 자금주 명의로 발행돼야 하나 발행자금을 증권사가 대납하고, 제3자인 건설회사 등의 명의로 CD 사본 및 발행 사실확인서에 기재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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