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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원 오가는 게임 아닌 도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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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 성인오락실 시장을 휩쓸고 있는 릴게임 '바다이야기'. LCD 화면에 조개와 산호초·물고기 등 바닷속 풍경을 화려한 그래픽으로 구성했다.

'바다이야기'는 2004년 12월 시중에 등장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성인오락기다. 빠찡꼬.슬롯머신처럼 돌아가는 그림을 맞추면 점수를 얻는 릴 게임(reel game)의 일종으로 4개의 원판에 나타나는 그림에 따라 당첨 여부가 결정된다.

'활어횟집'을 떠올리는 바다이야기는 산뜻한 디자인과 아기자기한 화면으로 구성돼 있어 지난해 중반부터 성인오락실 게임기 시장을 평정하다시피 했다. 현재 전국 1만5000여 성인오락실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4만5000여 대가 팔렸다. 한 대의 가격은 770만원, 모두 3465억원어치가 팔렸다는 얘기다. 시중에선 '세 명이 10억원을 투자해 바다이야기 100대로 성인오락실 사업을 하면 석 달 안에 투자금 전부를 되찾을 수 있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한다.

◆ 왜 인기 있나=1만원권 지폐를 투입하고 시작 버튼을 누르면 100점(100원)씩 소진되며 문어.조개 등 바다생물 무늬가 회전하다 정지한다. 이때 배열에 따라 점수를 얻는데 무늬가 일치하면 상품권을 경품으로 받는다. 상품권은 한 차례 게임에 최대 5000원권 4장(2만원)까지로 제한돼 있다.

바다이야기의 인기는 법정 경품 한도액인 2만원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예시'와 '연타'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게임 중 고래.상어와 같은 특정 상징물이 화면에 나타나면 다음 게임부터는 연속으로 2만원씩 받을 수 있는 기능이다. 잭팟을 계속 터뜨리게 하는 것과 비슷하며 한 시간에 최대 300만원까지 상품권을 딸 수 있다. 게임이 아니라 수백만원이 오가는 도박인 셈이다.

예컨대 대형 화면의 바닷속에 갑자기 어둠이 깃든다. 뭔가 터진다는 예고다. 상어가 꼬리지느러미를 힘차게 흔들며 나타나면 화면 아래쪽에서 돌아가던 물고기 그림들이 짝을 맞추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은 고래다. 고래가 느린 속도로 지나가는 동안 잭팟이 터지기 때문이다.

예시.연타 기능은 사행성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불법이다. 그러나 성인오락실업자들이 현장에서 불법으로 게임기를 개조해 예시.연타 기능을 추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바다이야기가 기계식이 아닌 전자식이어서 프로그램을 손보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바다이야기가 설치된 성인오락실은 손님에게 현금을 지급할 수 없다. 대신 영화 관람, 도서 구입 등에 사용되는 문화상품권을 경품으로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업소에서는 인근에 교환소를 두고 있거나 즉석에서 직접 현금으로 교환해 준다.

성인오락실은 2002년 이후 급증했다. 2002년 '음반 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성인오락실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 사행성 논란=바다이야기는 2004년 12월 1.0판이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 심의에서 '18세 이용가' 판정을 받았고, 지난해 4월에 1.1판이, 8월에 2.0판이 각각 같은 등급으로 심의를 통과했다. 영등위는 지난해 5월 바다이야기 2.0판, 3.0판에 대해 90일간 등급분류를 보류했다. 사행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영등위는 법적 문제점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그해 8월 2.0판에 대해 '18세 이용가'로 등급 분류해 심의를 통과시켰다.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는 지난달 대전에 본사를 둔 게임기 제조사 에이원비즈 본사를 압수수색해 승률을 본사 차원에서 조작했는지를 수사 중이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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