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주자들의 가을 준비 ③ 박근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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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끝, 이제는 행진'.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17일 "다음달 중 서울 여의도에 캠프 사무실을 열겠다"고 말했다. 내년 대선과 그에 앞선 당내 대선 후보 경선 준비를 위한 것임은 물론이다. 6월 15일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2개월 만의 첫 움직임이다. 캠프의 규모가 당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10명 안팎이 모여 박 전 대표의 일정을 챙기고, 언론을 상대로 한 홍보 일을 돕는 '확대 비서실' 정도의 개념이다. 정책을 개발하고, 지원 세력을 묶는 것과 같은 본격 캠프는 연말께나 만든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그는 "캠프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어쨌든 사무실이 필요하니…"라며 말끝을 흐렸다.

-캠프를 만든 뒤 어떤 활동을 할 것인가.

"당분간 국회 활동에 집중하겠다. 연내엔 독일 등 유럽 국가와 중국을 방문한다." (그의 측근 의원들은 박 전 대표가 올 가을 독일 최초의 여성총리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만나고,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4년 방문했던 독일 루르 지방 함보른 탄광도 찾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누가 캠프 책임자가 되나.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외부 인사에게 맡기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그는 여름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기까지 '휴식과 구상'에 몰두했다. 5월 20일 테러를 당한 뒤 3개월째 사실상의 칩거생활을 이어갔다. 스스로 '방학'을 선언한 뒤였다. 대중 앞에 나서는 일을 피하고, 공적인 약속은 줄였다. 피서지와 휴가도 외면했다.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엔 언제나 '노(No)'라고 답했다. 그래서 주변에선 '신비주의 전략'이란 얘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정작 그는 "당무와 선거운동으로 인한 피로를 풀고 싶었다"며 "재충전의 기간이었다"고 설명했다. 테러 상처의 영향이 컸다. 테러사건 당시 주치의였던 신촌 세브란스병원 탁관철(성형외과) 교수는 "박 전 대표가 테러 전의 정상생활로 돌아가는 데 6개월쯤 걸린다"고 말했었다.

테러로 인한 상처는 많이 회복됐다고 한다. 박 전 대표는 "최근엔 집에서 상처 부위의 테이프를 떼고 지내지만, 장시간 외출할 때는 자외선을 막기 위해 테이프를 붙이고 나간다"고 말했다. 그의 측근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처 부위의 감각을 느낄 수 없었지만 지금은 느낌이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2~3주에 한 번씩 그를 치료하는 탁 교수는 "치료 결과가 아주 좋다"며 "2차 성형수술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상처가 깊었던 침샘과 턱 근육이 잘 봉합돼 특별한 흉터가 남지 않을 것 같다는 전망이다. 박 전 대표는 "성형이 필요 없다면 정말 좋겠어요. 하지만 아직은 몰라요"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요즘엔 독서와 단전호흡에 몰입하고 있다. 10여 권의 책을 읽었다고 박 전 대표는 말했다. 토머스 프리드먼의 '세계는 평평하다', 김정렴 회고록인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조지 레이코프가 쓴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등의 책이 유익하더라고 했다. 세계화.선진화와 관련된 책들이다. 테니스나 탁구처럼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운동은 멀리했다. 그는 "단전호흡만으로도 건강 회복에 도움이 많이 됐다"고 했다. 싸이월드 홈페이지에 선글라스 모습의 사진(한나라당 대표가 되기 전 일본 방문 시 촬영)과 글을 올리고, 친척이나 가까운 사람과 식사를 함께하는 여유를 즐겼다.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 미 국무부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 차관보 등을 배석자 없이 만났다. 안부를 묻는 중국.일본.유럽 외교관들과도 만났다.

박 전 대표는 15일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육영수 여사의 32기 추도식에 참석했다. 지난해에는 눈물을 보였지만 올해는 밝은 표정이었다. 이날 추도식을 마친 뒤엔 동생 지만씨 자택에서 별도의 제사를 지냈다.

박 전 대표에게 이번 여름은 에너지를 모으는 기간이었다. '자율과 자유'란 화두에 몰두했다. 그는 "선진 한국으로 가려면 자율과 자유의 확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했다. 그의 '작은정부론'과 맥락이 닿아 있는 얘기다. 평소 "큰 정부는 이미 실패로 끝난 구시대 사회주의의 유물"이라고 말했다. 그의 측근 의원들은 "박 전 대표가 경제와 외교.안보 등 관련 전문가들과 이런 문제를 놓고 깊이 있는 토론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승민 의원도 "박 전 대표가 앞으로 대학 강연 등을 통해 한.미 관계, 정계 개편, 개헌 등의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큰 비전도 제시할 것"이라고 했다.

핵심 참모로 분류되는 유 의원도 박 전 대표의 '여름 특훈'이 끝났음을 확인해준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이제 긴 여정의 출발선에 선 것이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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