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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 외교 '중국의 내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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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6월 말 중국 인민해방군 고위 대표단이 비공개리에 일본을 찾았다. 미사일 방어체제(MD) 공동 구축을 서두르는 등 시시각각으로 강화되는 미.일 동맹이 자국 방위체제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한 방문이었다.

사실 해방군 대표단의 일본 방문은 상황으로 볼 때 이례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매년 참배하는 바람에 중.일 관계가 잔뜩 얼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중국의 우이(吳儀) 부총리는 고이즈미 총리와의 면담 직전 일방적으로 취소를 통보하고 귀국했을 정도다. 중국 지도부는 그 뒤 거듭 되는 일본의 '러브 콜'에도 불구하고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중국 국민과 중.일 관계를 해치는 핵심"(후진타오 주석 3월 31일)이라며 냉랭한 태도를 거두지 않았던 터였다.

그럼에도 고위 군사대표단이 일본을 찾은 것은 그야말로 명분은 명분대로 내세우고, 실속은 죄다 챙기는 중국식 고단수 외교술이라는 평가다. 이번 고이즈미 총리의 8.15 야스쿠니 신사 참배 폭풍 속에서도 중국 외교는 이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했다.

중국 외교부는 고이즈미의 참배 직후 "인류의 양식을 짓밟는 일"이라며 강력한 비난 성명을 냈다. 리자오싱(李肇星) 외교부장은 주중 일본대사를 불러 '엄중한 항의'가 담긴 중국 정부의 성명을 면전에서 낭독했다.

중국 정부의 강도 높은 불만과 항의가 이 정도면 중국 사회와 언론도 들끓을 만했다. 하지만 일부 시위대가 주중 일본대사관 주변에 모여든 것 외에 중국은 전반적으로 조용하게 넘어갔다.

때론 이율배반적이면서 뜨뜻미지근하게 보일 수 있지만 중국은 실속에 대해서는 이같이 대단한 집착을 보인다. 자주와 민족이라는 구호로 국제관계를 저울질해 갈수록 뭔가를 잃어가는 듯한 한국의 외교와 자꾸 비교가 된다.

유광종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