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도 중심 잡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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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내년도 경제운용계획의 윤곽이 잡혀가는 모양이다.
조순 부총리는 18일 새해 경제운용계획의 골격을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오는 22일에는 이 골격을 바탕으로 대통령이 주재하는「경제 사회 균형발전 확대회의」를 열어 최종 방침을 확정,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들린다.
따라서 내년도 경제운용계획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을지는 앞으로 열릴 확대회의를 기다려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18일 조 부총리가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내용에 접하고 우리는 현 경제팀의 현실인식이나 대응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회의와 우려를 감출 수 없다.
보도에 따르면 내년도 경제운용계획의 기조는 안정에 우선을 두고 금리나 환율은 보수적으로 운영하되 통화량의 신축적 관리에 의해 실세금리를 낮추는 방안을 모색하리라 한다.
동시에 선별적 투자촉진책을 강구, 대기업에 대한 수출산업 설비금융을 한시적으로 부활하되 한때 거론된 50대그룹의 신규 설비투자자금 모두를 여신관리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은 보류키로 했다 한다. 이밖에 무역금융에 대한 일부 지원조치가 따르리라 한다.
정부가 수출산업의 경쟁력 약화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 부문에 대한지원을 부분적으로나마 강화키로 한 것은 평가 할만 하다. 특히 수출산업설비자금의 공급대상을 대기업으로 확대하고 무역금융을 늘린 것은 빈사상태의 수출업계에 다소나마 숨통을 틔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금리·환율 등 보다 폭넓은 파급효과가 기대되는 정책수단의 동원에 인색한 점은 현 경제팀이 현실을 보는 시각에 아직도 낙관론이 크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의념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정책수단의 선택에는 그것이 가져올 부작용을 염두에 두어야하고 안정기조를 깨뜨리지 않아야 한다는 요구로 인해 수단의 선택에 제약이 따르리라는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그러나 만성적인 자금공급부족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통화관리에 의해 자율적으로 금리를 낮추도록 하겠다는 발상이 과연 실현성이 있는 것인지, 그리고 가령 그것이 이루어진다 해도 금리가 내릴 정도로 돈을 풀어 과연 안정기조가 유지된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환율문제만 해도 정부 스스로가 우리 원화에 대한 평가가 5%정도 고 평가되어 있다고 시인하면서 이에 대한 확고한 입장표명을 주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물론 현재의 경제 위기가 금리나 환율 등의 대응 요법만으로 극복되기 어려운 여러 가지 경제외적 요인을 안고 있음을 알고 있고 이의 해소가 선결 과제임을 여러 차례 지적한바 있다.
그러나 다행히 연말에 접어들면서 부분적이기는 하나 각계 각층의자제분위기가 싹트기 시작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우리사회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던 정치적 문제가 대타협에 의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
내년도에 당면할 최대과제는 경제난국의 극복으로 초점이 모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 같은 시점에서 경제팀이 할 일은 시세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 중심이 잡힌 경제정책으로 기업인·근로자를 포함한 온 국민의 신뢰를 다시 찾고 국민적 에너지를 경제위기극복, 지속적 성장가도진입에 쏟아 넣도록 하는 일이다.
정부가 우리경제의 진로에 대해경기 부양과 안정기조 유지 사이를 조령모개식으로 왔다갔다하고 금융자율화로 가는지, 정부 규제 강화로 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책이 바뀌어서는 따라가는 국민이 갈피를 못 잡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신뢰의 상실로 정책의 효과가 반감된다는 사실을 정책 입안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지난 연말의 금융자율화조치와 연초의 자금동결조치·토지공개념도입과 주식매입자금 무제한 지원조치, 11월 14일의 경기부양책과 이번의 안정추구방침 등 정부가 취해온 그 동안의 경제시책에서 우리는 현경제팀의 경제철학이 무엇인지 미궁에 빠지고 만다. 이래서야 내년도 경제가 정상궤도로 나갈 수 있을지 불안감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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