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숙식-2천원짜리 "야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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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숙직만 없어도 잡무부담에서 한숨 돌릴것 같아요. 야간 경비원 노릇까지 해야하니 숙직날이면 「죽을 맛」 입니다.』
서울C중 김모교사 (28)는 10일만에 한번씩 돌아오는 잦은 「숙직외박」 때문에 신혼6개월인 부인에게 미안한 감이 들때가 한두번이 아니라며 우리나라말고 세계 어느 나라에「숙직교사」 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이 학교의 교사수는 교장·교감을 제외하고 45명. 이중 여교사 30명과 50세가 넘은 고령교사 3명을 빼고나면 숙직교사는 단 12명.
『밤10시부터 1시간마다 플래시를 들고 교실·서무과등 이곳저곳을 살펴야지요, 숙직실 연탄불도 갈아야지요, 이러면서 새우잠으로 눈을 잠시 붙인후 숙직일지를 써 결재를 받고서야 「별탈없는 불안」 에서 벗어납니다.』
김교사는 12명 숙직교사중 자신같은 처지의 신혼교사가 3명이나 된다며 방학도 없는 중·고 남자교사들의 숙직이 언제까지 갈것인지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고 했다.
고용원 1명이 숙직보조를 하고 있으나 숙직책임은 교사에게 있기때문에 교무주임이 숙직팻말을 책상위에 갖다놓는 날이면 『오늘도 또 김빼는구나』 하는 푸념이 저절로 나온다고 한다.
서울S여고의 경우도 마찬가지. 교사 67명중 남교사는 13명밖에 안돼 남교사들은 여간 고달프지 않다.
『숙직날 행여 도둑이 들거나 사고라도 일어날까 두려워 밤새 신경이 곤두서 숙직 다음날 수업시간이면 졸음을 참느라 애를 먹습니다.』
2학년주임 박모교사 (43) 는『2년전 서무과에 도둑이 들어 숙직교사가 시말서를 쓰고 경찰서에 불려다니는 죄인취급까지 당했다』 며 『숙직피로때문에 교재연구를 하지못해 다음날 수업에 지장이 적지않다』고 했다.
당직규정에는 숙직다음날 휴무시간을 갖도록 돼있으나 수업을 기다리는 학생들을 외면할수 없다. 「피로한 수업」 을 강행하다보니 결국 알찬 수업이 되지못해 학생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학급수가 적은 지방 중소도시나 신설학교일수록 심하다. 읍·면단위 중·고교에서는 심지어 4∼5일이나 1주일에 한번씩 숙직을 하는 형편.
중·고 남교사들의 숙직고충은 고충에 그치지 않고 숙직실의 연탄가스중독 사고위험마저 안고있다.
경남 양산군 서생국교에서는 지난81년 3월21일 숙직교사 2명이 연탄가스에 중독, 1명이 숨졌고 84년 11월2일 마산성호국교에서도 연탄가스 중독사고가 일어나 숙직교사 2명중 허모교사는 숨지고 김모교사는 간신히 생명을 건겼다.
대구K중학교에서는 지난해 11월 숙직을 하던 이모교사(38)가 숙직실 문틈으로 새어든 연탄가스에 중독, 2개월동안 머리가 쑤시는등 후유증으로 큰 고역을 치렀다.
이교사는 자신같이 숙직하다 연탄가스에 취한 적이 있는 교사가 한두명이 아니라며 『사고를 당한이후 숙직때마다 연탄가스중독 노이로제에 걸려 불안속에 밤을 꾜박샌다』고 했다.
문교부는 양산·마산의 두국민학교 숙직교사 사망사고후 지난해까지 국민학교에 대해서는 교사숙직제를 없애고 고용원 숙직제로 대체했으나 중·고교 숙직은 예산타령속에 질질 끌어오고 있다.
현재 지급되는 숙직수당도 단돈 2천원. 이것도 72∼81년까지 10년간 1천원씩 주다 82년들어 3백원이 인상됐다가 2천원으로 오른 것이다.
『숙직날은 당일 저녁, 다음날 아침과 점심을 사먹어야 합니다. 한그릇에 2천원인 설렁탕으로 세끼를 때워도 6천원이 들잖습니까.』
서울Y공고 황모교사(41)는 『숙직수당이 2천원뿐 이라고 같이 날새며 고생한 고용원을 따돌린채 혼자 사 먹을수 없어 따라서 잡무부담에 경비부담까지 경치는 야간경비원』 이라고 씁쓰레해한다.
황교사는 『일반회사에서도 숙직비가 최소한 식비인 5천원이상 1만원이 평균인데 2천원을 그나마 「수당」 이란 이름으로 받을땐 자존심마저 상한다』 고 했다.
일선교사들은 실비도 안되는 숙직비를 주며 수당이라고 하는 것은 문교부가 교사숙직을 의무사항쯤으로 여기고 있는 관료적 발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숙직고충은 이 뿐만이 아니다. 야간경비 순찰을 하다 불량배들에게 봉변까지 겪는다.
인천T중 윤모교사(48)는 지난10월5일 밤11시30분쯤 교내순찰중 소주병을 들고 담을 넘어 들어온 10대 청소년 7명이 운동장 구석에서 술판을 벌여 내쫓으려하자 『당신이 뭐냐, 경비원이냐』 고 대들며 멱살까지 잡고 행패를 부려 1시간동안 온갖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이렇듯 중·고 남교사의 숙직고충과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것은 70년중반부터 여교사수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
75년만해도 여교사 비율이 중학교의 경우 20%선에 머물렀으나 89년 현재는 8만1천6백99명중 44%가 넘는 3만5천7백7명. 고교는 총8만7천2백77명중 여교사가 1만9천27명으로 24%선이어서 중학교의 숙직부담이 더 높다.
중·고교사숙직제. 일선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수업결손을 가져오는 일제잔재를 이대로 둘 수 없다고 함분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문교부가 목청높게 외치는 교사근무 환경개선안이 어디로 실종됐느냐고 묻고 있다.

<탁경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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