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기업사냥꾼 3인방 월가 컴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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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980년대를 주름잡던 미국의 대표적 기업 사냥꾼(Raider) 3인방이 월가로 다시 돌아왔다. 커크 커코리언(89), 칼 아이칸(70), 넬슨 펠츠(64)가 그들이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오랜 침묵을 깨고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재력으로 다시 기업 사냥에 나서고 있다.

16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펠츠가 최근 미국의 미디어 기업 트리뷴의 지분 1.2%를 사모았다는 사실이 15일 알려지면서 트리뷴의 주가는 4%나 뛰었다. 펠츠의 의도가 정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주주의 구조조정 요구로 시끄러운 트리뷴에 펠츠가 투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80년대 스내플.웬디스 등 식품업체를 공격한 전력이 있는 펠츠는 오랜 잠에서 깨어나 올 들어 세계 최대 케첩 메이커인 하인즈를 제물로 삼았다. 하인즈의 2대 주주로 떠오른 펠츠는 자사주 매입과 자산 매각 등을 회사에 끈질기게 요구한 끝에 6월 10억 달러의 자사주 매입과 배당금 인상, 15개 공장 폐쇄 등의 '선물'을 회사로부터 약속받았다.

펠츠 못지않게 주목받고 있는 인물은 커코리언. 과거 MGM영화사.크라이슬러 등과 경영권 분쟁을 치른 경력을 자랑한다. 타깃으로 삼은 기업은 제너럴모터스(GM). 그는 최근 자신이 4대 주주인 GM에 르노-닛산과 자본 제휴를 하도록 압력을 넣으면서 국제적 관심을 끌고 있다.

올 들어 타임워너를 상대로 기업 분할 압박을 가하고 있는 아이칸은 한국에도 눈을 돌려 KT&G를 상대로 자회사인 인삼공사의 상장과 부동산 매각을 요구하고 있다.

FT는 80년대 '정크본드의 황제'로 불리던 마이클 밀켄의 지원 아래 기업을 헤집고 다녔던 이들이 다시 활동을 재개한 것은 단기 이익을 좇는 기업문화가 심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80년대 말 미국 기업들이 '독약처방(poison pill:적대적 인수합병 위기에 처한 기업이 신주 발행 등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것)' 등을 도입하면서 90년대 역풍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기업 사냥꾼에 이어 요즘은 헤지펀드들이 기업에 투자하면서 경영 압박을 가하고 있다.

물론 이들 3인방 기업 사냥꾼과 현재 유행하는 헤지펀드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기업 사냥꾼들은 유명한 회사의 주식을 사들인 뒤 이사 선임이나 기업 분할, 또는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한다. 예전과 달리 적대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아이칸이 적대적인 방법으로 인수했던 미 항공사 TWA가 92년 도산하는 등 아픈 경험도 감안한 듯하다.

반면 헤지펀드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저평가된 기업을 적대적으로 공략하며 복잡한 금융기법을 구사한다.

FT는 엔론 사태 이후 회계의 정확성과 단기 이익을 중시하는 기업문화가 심해지면서 고전적 기업 사냥꾼이나 워런 리히텐슈타인 같은 신흥 주주행동주의자들이 활개치는 토양이 조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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